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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모든 마음이 아픔임을 알고 받아들이는 곳, 모든 마음이 사랑임을 알고 받아들이는 곳

마음아 놀자 후기


마음깨우기 명상 정말 위대한 가치를 느꼈습니다.

억울이 2014-03-02 00:00

작년에 저는 와이프와 잦은 부부싸움으로 인해 사이가 안좋아졌고 결국 12월 30일에 크게 부부싸움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싸움을 사소한 것으로 생각했지만, 와이프는 너무 큰 것으로 생각하는 차이가 발생했고, 이를 통해 저희는 점점 멀어졌습니다. 저희 부부는 곧 호주로 유학를 떠날 계획이었는데 이렇게 사이가 안좋아지니 유학을 가야하는 건지도 확실치 않았습니다. 신혼집이 1월 초 계약이 만료되어 이사를 가기로 했었는데, 이 또한 싸움으로 인해 이렇다 할 준비도 못한 채 진짜 이혼하자는 말까지 내 뱉으며 싸웠습니다. 그런 저는 자존심을 지키려 끝까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하지 못하고 와이프를 보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리하려고 와이프가 왔을 때 제 마음에서 미안하다는 말이 먼저 나왔습니다. 와이프는 이 말을 그렇게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저의 처갓집은 처형을 시작으로 처제, 장모님, 형님까지 자운선가에 다녀온 상황이고, 와이프도 이런 가족들의 변화에 본인도 가고 싶다며 같이 가자고 얘길 했는데, 저는 사이비 단체같은 자운선가에 왜 가냐고 하면서 와이프가 가지 못하도록 여러 가지 핑계를 댔습니다. 그리고 계속 무시를 했습니다. 무시한 이유는 2가지였습니다. 한 가지는 사이비단체란 선입견과 또 다른 한 가지는 100만원이란 돈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자운선가에 빠져 있는 처갓집이 너무나 너무나 싫었습니다. 완전히 여기에 빠졌다고… 처갓집에 가는 횟수도 점점 줄였습니다. 처갓집에 가지도 않고 대화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와이프는 1월8일자 187기 신청을 했고 저는 1월 4일경 그 당시엔 일단 화해를 먼저 하고자 “그럼 자운선가에 다녀오겠다.”라고 말하고 급히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서와 나를 소개하는 소개서를 얼렁뚱땅 작성했습니다. 4박5일 그냥 참으면 화해할 것이고, 다시 예전처럼 그냥 살게 될 거라고 그까짓 5일 못 참겠나 생각을 했습니다.

 

신청 후 남은 3주간의 시간동안 가슴이 답답할 정도로 너무나 가기 싫고, 짜증나고, 열이 받아 미쳐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이런 짜증을 없애고 자운선가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용서를 받고자 저는 바로 홀로 도보여행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대관령을 시작으로 통영까지 15kg의 배낭 하나를 매고 14일간 하루 20~40km의 산행과 도보를 통해 나의 반성과 용서를 빌고 그 마음을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자운선가 입소 3일전 여행을 끝내고 와이프를 만나 마음과 책을 건냈고, 이런게 내 마음이다라고 전하며 자운선가에 안가면 안 되겠느냐고 회피하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1월 29일 서울 사당역에서 아침 7시25분 버스에 발을 올리는 순간까지도 정말 버스에 올라가기 싫다고 와이프에게 전화를 해서 가기 싫다고 또 떼를 썼습니다. 짜증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지리산으로 향하는 그 버스를 타면서 마음을 없애고자 책을 읽고 있으니, 어느 샌가 자운선가에 들어가는 표지판이 보였습니다. 여기 오니깐 처음에는 어떤 곳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는데 무슨 절 같기도 하고 기와집들이 몇 채 있고 해서 한숨이 났습니다. 정말 머리가 띵하고 어떻게 여기서 내가 5일이나 버티지라는 생각에 답답했습니다. 아, 또 와이프랑 처갓집이 무척이나 원망스럽고 짜증나고 열받고 화가 머리 끝까지 났습니다. 거기다가 이번 188기는 설명절날 가는 것이기에 설날은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하는데… 설날 가족 모임에 참석을 안 하면 아마 엄마나 가족들이 와이프를 또 나쁘게 볼텐데 하는 생각과 죄를 짓는 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양손을 불끈 쥐고 머리에 핏대를 세우며 정말 내가 서울에 올라가면 복수해야지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걸까? 내가 왜 여기에 와야 하나? 정말 죽고 싶은 생각과 도망가고 싶은 생각들… 별별 생각이 다 났습니다. 그렇게 첫날 자운님의 강의가 시작되었는데, 사실 이미 귀와 마음을 닫고 있는 상태여서 강의 내용의 자체를 그냥 무시했습니다. 들으려 하지 않았기에 어떤 강의였는지 기억조차 잘 나지 않고 그냥 그 곳에 계신 사람들의 얼굴들과 모습들만 보고 머릿속엔 사이비집단이란 생각만이 가득했습니다.

이어서 신념님의 강의가 시작되었는데, 신념님께서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여기에 오신 분 중에 억지로 오신 분? 손들어 보세요?” 이 질문에 저는 그냥 아무렇지 않게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마음에서는 한 10명정도는 있을 줄 알았고 2번째 줄이라 뒤를 보지 못했는데 아마도 저만 손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신념님께서 “여기는 억지로 오시면 안됩니다” 라는 말씀 하셨을 땐 전 이런 곳이면 억지로 와도 포용을 해야지 하는 않는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동영상 안보시고 오신 분?” 신념님의 질문에 이번엔 저를 포함하여 3명이 손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4박 5일이 끝난 지금 되돌아보니 왜 이런 질문을 하셨는지, 이 두 가지에 질문에 대한 중요성을 그땐 몰랐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수행을 하면서 이튿날 정말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감정이 폭발하면서 그래 이왕 이렇게 온 만큼 한번 믿어 보고 나를 한번 맡겨 보자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삼일, 사일이 지나고 나니 어…. 어…. 기분이 엄청나게 좋아지고 이제 첫 수행이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나를 조금씩 알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사랑과 분노, 두려움, 외로움, 수치심 등등 나를 알아갈 수록 그 만큼 기분이 말도 못하게 정말 좋아졌습니다. 속이 후련해지고 너무나 시원했습니다. 저의 마스터이셨던 라사님께서도 너무나 잘 알려 주시고 정말 잘해주셨습니다. ‘어쩜 이렇게 내 마음을 잘 아실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혜라님 강의 때마다 50%는 집중하고 50%는 그냥 흘려 들어버렸고 처음엔 의지가 없어 이틀동안은 라사님과 혜라님께서 내주신 숙제를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하기 싫었습니다. 믿지 못하는 관념과 스스로를 위로하려는 관념 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저는 달라졌습니다. 제 나이도 아직 젊으니 4박 5일이란 시간을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다음에도 꼭 기회를 만들어 이 숙제를 꼭 풀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제 수행의 시작을 했으니까요.

 

저는 수행기간 동안 일기를 쓰면서 하루하루 제가 느꼈던 감정을 적었습니다. 그리고 수행이 끝난 지금 저는 제가 사랑하는 우리 가족을 위해서 편지를 써서 평생 처음으로 가족들 앞에 섰습니다. 지금까지 가족들 앞에서 이렇게 하지 못한 이유는 난 남자니깐, 무뚝뚝하려하고, 수치스럽고, 말 안해도 다 알겠지 등등의 여러 가지 관념에 사로잡혀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저는 당당히 무릎꿇고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이란 제목의 용서를 구하는 편지를 낭송했습니다. 자운선가에서 느낀 감정을 그대로 느끼니 바로 가족들은 모두 저의 용서를 받아 주시고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 주셨습니다. 너무나 행복했고 저를 사랑해 주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에 따뜻함을 또 한 번 느꼈습니다. 이렇게 저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했고 자운선가에 가게 해준 우리 가족들 장모님, 처형, 처제, 형님 그리고 사랑하는 와이프에게 정말 정말 감사했습니다.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저의 몸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 많이 받았던 분노와 스트레스 때문에 고혈압이 있었었고, 항상 관자놀이에 혹 같은 것이 볼록 튀어 나와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사라진 것입니다. 처갓집 모두 다 놀라 제 얼굴을 계속 만져 봅니다.

정말 무뚝뚝하시고 근엄하신 장인어른께서도 너무나 너무나 신기하게 보십니다. 라사님과 상담 때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고 고혈압이 있다고 말씀 드렸더니 라사님께서 ‘이상한 장치’와 기운을 듬뿍 주셨고, 믿고 수행을 하니 이런 변화가 생긴 것 같습니다.

 

제가 라사님께 저희 장인어른과 저희 어머니를 자운선가에 어떻게 보내야 할지에 대한 질문을 드렸었는데 그 답은… 그냥 보여 드리는 게 제일인 것 같습니다. 이제 자운선가에 ‘억지’로 오면 안되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4박5일 눈 깜빡하니 너무나 빨리 지나갔습니다. 제가 믿지 못했고 흘려버렸던 첫째날, 둘째날… 그 시간들이 얼마나 아까운지 지금은 너무나 너무나 후회가 됩니다. 4박5일 끝나고 전세버스에 올라 같은 방을 썼던 수행자 분과 많은 얘기를 하며 서울까지 올라왔는데, 그때부터 벌써 비닐하우스가 그리워졌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믿고 열심히 할걸… 더 풀고 올걸.,.

 

이제 저희는 호주에 가서 언제 한국에 들어올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본래가 원한다면 어떤 것보다도 우선적으로 자운선가에 재참을 하거나 행복학교에 등록을 할 것입니다. 자운선가에서 세상에 그 어떤 돈이나 물질적인 것과도 바꿀 수조차 없는 정말 위대한 가치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살면서 관념에 휘둘리지 않게 지속적인 수행을 하여 저를 더 알아가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행복을 이루고 싶습니다. 이렇게 소중하고 위대한 가르침을 주신 자운님, 혜라님, 라사님, 신념님, 한나님, 젬마님과 행복학교 푸도님들을 비롯해 188기 도반님들 모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