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체마을 new

REVIEW 모든 마음이 아픔임을 알고 받아들이는 곳, 모든 마음이 사랑임을 알고 받아들이는 곳

영체 체험 후기


혜라 엄마와 춤을

사랑스런 2021-04-30 17:49

아니! 세 곡을 선곡해야 한다고?

춤곡으로 세 곡을 선곡하라는 말을 듣자 당황스러웠다. 한 곡만 정했는데 세 곡이라니...

이리저리 궁리를 해보았지만 머리가 멍해지고 생각나는 곡이 없었다. 영체마을에서 자주 듣던 노래가 떠오르긴 했지만 다른 신선한 곡이 필요했다. 그 순간

‘너 이 나이처먹도록 좋아하는 노래하나 없이 무식하게 살았단 말이냐?’

‘이 열등한 인간아.’

‘큰일났네. 큰일났어. 너 들키면 어쩌냐’

가슴이 쿵쾅거리고 열이 확 뻗쳐서 더웠고 답답했다. 한참을 그러다가 제 정신으로 돌아와

‘까짓거 그래 수치당하지뭐. 뭐 어때? 너는 좋아하는 노래도 없는 열등이 맞잖아. 히~~잉 엄마가 더 좋은 노래로 선곡해주시겠지 뭐~’

마음이 내려갔다. 그리고는 떠오르는 노래가 있어 흥얼거리다가 도반님 도움으로 그 제목도 알게 되었다.

‘햐~~ 좋~았어~~ 그래, 이거야~~ 땡큐~~’

그러나 내 노래는 혜라 엄마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완컷당했다.

 

사랑이 뭐에요? 난 사랑을 몰라.....

내 짝사랑하던 선생님이며 아버지라 이름하는 그 분은 대외적으로 내 존재를 차갑게 외면하셨다. 난 존경받은 교사의 딸이란 우월한 끈을 필사적으로 부여잡으며 우월이와 열등이 사이에서 널을 뛰며 애를 쓰는 초라하고 열등한 딸이었다. 나는 남편에게 버림받았음도 인정하지 않았다. 내 기대에 못 미치고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며 무시하며 미워했고 나 또한 미움받고 무시당했다. 난 열등한 것은 안팎으로 다 죽이고 싶었다. ‘미움은 절대로 안되지. 사랑해야해’라는 강박증과 ‘열등한 것들 다 죽이고 싶어’란 마음이 각자 따로 놀아 너무 괴로웠다. 마음은 차가웠고 화가 치밀고 사랑은 멀었다. 난 들키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고 무서웠다. 위선 떠는 내가 싫고 들킬까봐 두려웠다. 열등감과 무기력, 죄책감이 나를 갉아먹었고 몸이 고장났다. 머리는 멍하고 정신이 없었다. 책임지며 아무리 애를 써봐도 엄마, 아내, 딸, 교사로서의 내 현실은 암담했고 화가 났다.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본래는 퇴로가 막힌 나를 몰고 몰아 여기까지 인도하셨다.

 

미움덩어리~ 빵살~

“저 태산만한 미움덩어릴 어쩌냐~”

“빵살이야 빵살”

혜라님 말씀이었다.

영체, 1차크라, 오로라, 공명... 등 여러 체험 이야기들이 내게는 딴 세상 이야기였다.

‘하나도 안 느껴져’

‘모르겠어‘

‘난 언제 저기까지 가나’

위축되고 열등했다. 바닥을 친다. 수행의 고통에 발을 담그는게 두려웠다. 하지만 방황하는 두 딸들이 내 올무가 되어 발을 담글 수도 뺄 수도 없는 어정쩡한 상태로 답답했다.

 

~~!! 엄마가 사랑이구나!!

랜선마음쇼에서 혜라엄마 눈빛이, 눈물이, 안타까운 표정이 내 마음에 왔다. 눈물이 났다.

그리고 며칠 뒤 충북지역 리더들 모임. 충남 리더님들 빈 자리에 끼는 은총을 입었다. 아무 공로없이 말이다. 이제 아주 조금씩 내게도 사랑이 나온다고 말씀드렸더니 혜라님은

  “화숙님, 거짓말하지 마. 그럴 리가 없어”라고 하신다.

  “어쨌든 거짓말인지 아닌지는 확인해보면 알지”라며 나오라고 하셨다. 혜라님과 춤을 추며 부족한 나에게 사랑주심이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흘렀다. 그 뒤로 천도제와 사랑세션에도 참가했다. 혜라님이 영체를 넣어주셔도 나는 영체가 들어가는지 나가는지 잘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밤낮으로 호소리를 열심히 들었다. 가끔씩 영화를 보거나 생활 속에서 두려움과 따뜻한 눈물이 찾아 들었다.

 

혜라님과 춤을

  풀어내기 시간. 처음으로 몸 반응을 느꼈다.

  ‘와~~ 나도 느껴지네~!!’

뻐근하고 묵직한 목과 어깨는 부드럽고 기분좋은 허브오일처럼 퍼져가고 뻣뻣하던 팔을 따스하고 부드러운 기운에 쌓였다. 수치 청산을 잘도 해내는 도반님들이 부러웠다. 난 수치 청산을 할 지경이 못되었다. 바닥난 곳간 사랑 채우기. 혜라님은 신나는 노래로 사랑을 채워야 한다며 내가 선곡을 바꾸셨다. 나는 내 행복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는 에고라고 하셨다. 혜라님 손을 잡고 눈을 보며 춤을 추는데 한 달 넘게 아파서 잘 걷지 못했던 무릎 통증은 완전히 사라졌다. 나는 응석부리는 아기가 되었다. 너무 좋았다. 따뜻했다. 이렇게 부족한 나에게 사랑주시는 혜라 엄마가 너무 너무 고맙고 아기가 된 나도 사랑스럽고 좋았다. 눈물이 났다. 한 번도 부리지 못했던 마음이었다. 신나게 뛰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혜라 엄마가 힘들어 보이시네... 안되겠다....살살 뛰어야지... 동작을 어떻게 해야하나... 신나고 즐겁던 노래가 그만 길게 느껴지며 세션은 끝났다. 휴~~

  ‘나는 내 행복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구나....그렇구나. 내가 그랬구나’

  ‘다들 수치를 청산하고 잘 치유하는데 난 아직도 사랑을 채워야만 하다니... 언제까지 이래 야하나?’

무겁고 답답하고 무기력했다. 혜라님은 세션자들이 자신과 연결되어 있음을 인지하라고 하셨고 시간이 지날수록 세션 도반들의 아픔이 내 경험과 연결이 되어 아주 조금씩이지만 처음으로 두려움과 아픔으로 들어가졌다. 그런데 세션 끝 마무리 하시며 혜라님이 다들 성수치가 어마어마하다고 하시면서 나를 콕 찍어서 지금 느낌이 뭐냐고 물어보셨다. 어깨가 들썩들썩 나도 색시하게 마음껏 춤을 추고 싶었다. 그래서

  “춤추고 싶어요”

라고 말씀드렸다. 물먹은 스폰지같이 무거웠던 몸과 마음에 날아갈 듯 힘이 솟구쳤다. 내 안에 귀엽고 사랑스럽고 섹시한 여자가 있었다. 사랑받는 아기도 있었다. 자유로웠다. 기뻤다. 서러웠다. 미안했다. 아팠다. 고맙고 감격스러웠다. 행복했다. 그건 사랑이었다. 특히 내가 수치스럽고 더럽고 열등하다고 수치주고 미워하고 버린 큰 딸이 너무나 안쓰럽고 서럽고 아팠다. 너무 아팠다. 그런데 그건 바로 나였다. 내가 더럽고 수치스럽고 열등하고 가질 자격없다고 가지면 안된다고 행복하면 안된다고 미워하며 죽이고 싶어한 바로 나였다. 바람난 남편에게 버림받음도 인정안하고 내가 네 죄를 용서해주겠다고 허세를 부린 아픈 나였다. 눈물이 났다. 기쁨과 참회의 눈물이었다. 내 무릎 통증을 미리 알았던 도반님들은 내가 태권도 발차기 하듯이 뛰어 올라 무대가 무너질까봐 걱정될 정도였다며 웃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 자유로움과 기쁨, 감사에 이어서 받을 자격도 없는 내가 혜라님께 사랑받았고 다른 도반들의 기회를 빼앗았다는 미안함과 두려움으로 심장이 뛰었고 배가 뻐근하고 답답해졌다.

  ‘나는 늘 이렇게 나를 버리고 수치주고 아프게 하는구나’

  ‘사랑받는 걸 허락하지 않는구나’

  ‘행복을 허락하지 않고 학대하며 살았구나’

알아차리고 아픔으로 들어가니 마음이 내려갔다.

 

이제 참회하며 받아들입니다

  이제 나는 깨어났다. 내 앞에서 펼쳐지는 모든 것 들은 내 마음이다. 늘 깨어나 알아차리게 되길 기도한다. 몸과 마음이 분리된 듯 차가운 내 마음에도 조금씩 온기가 돌고 아픔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사랑받으니 사랑이 조금씩 온다. 걸음마를 시작한 아가의 첫발처럼 이제 시작이다.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아픔을 건너 믿음의 세계로 가고 싶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하리라’

하시는 내 안의 영체님께서 인도하시는 그 안식처로.

사랑의 신 혜라 엄마~~!!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