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체마을 new

REVIEW 모든 마음이 아픔임을 알고 받아들이는 곳, 모든 마음이 사랑임을 알고 받아들이는 곳

마음아 놀자 후기


마음아 놀자 제가 받은 사랑

미소. 2017-03-14 00:00

혜라님이 그러셨지요.
열등이를 느껴야 진정한 우등이로 살 수 있다고!
사랑 한자락 받은 게 있으면 
열등이 느끼기가 쉬울거라고요. 
그래서 제가 받은 사랑을 느껴 보려 합니다.

*************************************************************************************
엄마!
보리고개 3년에 피죽 한 그릇도 못 먹어, 죽지 못해 살던 그 때!
(물, 풀뿌리, 소나무 껍질 등을 가리지 않고 배를 채워야 했던 그 때!)  
갑지기 불어난 열식구(엄마, 아버지, 언니 둘, 오빠, 시어머니, 
엄마의 친정엄마, 엄마의 친할머니,
그리고 돌아가신 큰 아버지 내외분의 자식인 조카딸 둘)를 거느리느라 
사는 것 자체가 힘든 그 시기에! 
제가 생겨버렸어요.
그것도 (태어났으면 내 언니인 아기가) 엄마 배속에서 죽어 나온 후에 말입니다.


그래도 산 목숨 죽어란 법 없어, 천만 다행히도! 
동네 유지의 농사를 열성으로 거들어 준 덕에, 생계를 이어 갈 수 있었지요.
배 수확철에는 (쇠로 된 함지박에) 배 한접(100개에다 열개를 더해서)을 
장정 서너명의 도움을 받아 머리에 이고,
고개고개를 넘어 10리가 넘는 진주장에 내다 팔았지요.
그냥 걷기도 힘든 울퉁불퉁한 그 길을, 그 무거운 걸 이고서 말입니다.
"무겁다. 반접만 이고 가라."는 주위의 권유를 무시하고, 
"반접은 싫다. 무거워도 한접을 이고 가겠      다"고 고집을 부린 엄마!
엄마가 그랬지요.
그 때, 목이 똑 부러질 것 같았고. 무릎이 아파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았다고!
(그것을 희망 삼고, 날마다 했으니! 휴~~)



그렇게 힘들 때, 제가 생겼으니! 
(엄마! 정말로 죄송합니다.)

그래서 엄마가, 
"숨쉬기도 힘들어 입에서 단내가 났다."고 하셨지요.
(툭하면 저를 지우고픈 마음!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그리하여 그리하여~~~
살림이 조금 펴졌을 때, 미싱을 사서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조각천을 이어, 알록 달록한 치마를 만들어 주셨지요.
난생 처음으로 새치마를 입고 학교에 가니, 
상급반 언니들이 "너무 예쁘다. 어디서 났노?" 하고 물었어요.
그런데, (속으론 좋으면서) 부끄러워 말한마디 못하고 얼굴이 벌게졌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였네요.
<엄마가 만들어 줬어요. 이뿌지예.>했으면 좋았을 걸 말입니다.


수줍은 새색시였던 엄마가, 돈 버는 재미를 알아, 
엄마 줌치엔 언제나 돈이 있었는데,
엄만, 늘 돈타령을 해서, 정말 가난한 줄 알았어요.
(그래서 돈 달란 말을 차마 할 수 없어서, 한 번도 말 못했어요.
 아뿔싸! 이것이 관념이 될 줄이야~~ㅠㅠ )


엄마가 시집온 해에도 먹을 게 없어서, 이웃집에 된장 한그릇을 빌리러 갔는 데, 
매몰차게 거절 당한 서러움의 한을, 그 돈으로 풀수 있었지요. 
돈이 모이자 당장! 유지의 밭을 빌려 콩을 심었고, 제일 큰 장독을 사서, 
장독 가~득! 된장과 간장을 담고는 
"그렇게 든든할 수 없었다."고 자랑스레 말하시던 엄마!
그 다다음 해에는 아버지랑 비탈진 밭을 사서, 고구마를 심어! 
해마다 (겨울 내내~) 원없이 먹게 해 주셨지요.
돈이 모이는 족족, 논과 밭을 사서, 
흰쌀밥, 찰밥, 수박, 참외, 밭딸기, 나무딸기, 가지, 고추, 상추, 토마토, 등등을
먹게 해 주셨지요.  
그리고 가장 빨리 나오는 복숭아종부터, 가장 늦게 익는 복숭아종까지 
복숭아 나무를 고루 심어,
세상에서 제일 맛난 복숭아를 넘치도록 먹게 해 주셨지요.  
제가 중학생일 때, 삼양라면 한 박스를 사오셨던 아버지!
얼마나 좋든지 삶을 생각도 않고, 봉지를 툭 뜯어서 우둑우둑 씹어 먹었지요.
먹성이 좋아 한 번에 2~3개를 먹어야 직성이 풀려 금방 없어져 버리곤 했는데,
떨어지면 또! 새 박스가 있었어요. 와우~~
<아부지! 고맙습니다.>
날마다 장에 다니는 엄마는 어쩌다 한번씩이지만,
풀빵을 사오고, (약간씩 흠있는) 사과도 사왔지요.
식구가 많아 떨이로 파는 것을 살 수밖에 없었던 엄마.
(눈깔 사탕 먹은 기억도 2~3번 있네요.)
또,

동네 잔칫날에는 그집 일을 거들어 주고, 
전이나 떡을 종이에 싸서 챙겨 오셨지요. 
우리들이 아주 맛있게 먹는 걸 보며 좋아하셨던 엄마.
동네 사람들은 
농번기는 물론이고, 마을 경조사에도 아버지와 엄마를 꼭 필요로 했지요.
마을 잔치 때, 아버지는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면, 장구로 장단을 잘도 맞추고,
(사람들이 권하면 마지 못해 하셨지만!) 
정말 맛나게 노래를 잘 부르셨지요. (오빠도 <노래하면 아버지!>라고 했어요.) 
흥많은 엄마는, 덩실덩실 춤추며 노래를 불러서, 사람들의 어깨도 들썩이게 했어요.
엄마는 엄마의 재주를 익히 알았나 봐요.
세월이 흘러흘러서 할머니가 되었어도
(유행가가 새로 나오면, 가사를 적어 익히고서는) 
(아는 사람들을 집에 오게 해서, 지짐 한 접시를 내 놓고,) 
"한번 들어 봐라." 하고선 신나게 부르고,
곧바로, 다 아는 노래 앞구절을 꺼내, 다같이 부르게 했지요.
(엄마, 아버지 노래를 녹음 못한 아쉬움이 커네요.)

그 밖에도 받은 사랑을 다 적으려면 끝이 없을 것 같네요.

*************************************************************

글로 써 놓고 보니, 
제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만 배고픈 시절이었고, 
그 이후론 배 불리 잘 먹었네요.
그런데 제 관념은 가난이, 너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네요.
허허~~ 

<난 잘못한 거 없다. 난 열심히 살았다.>고 당당히 말한, 
엄마의 말씀이 맞았네요!
그런데 이놈의 관념은 
사랑 못 받은 것만 기억하고 있었다니.. 
햐~~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 말문이 콱 막히네요.

잘 살기 위해 한 눈 팔지않고!
일할 땐 하고! 놀 땐 놀 줄 아셨던 부모님이셨고!
부모님의 사랑을 엄청나게 많이 받았는데, 그걸 애써 외면하고 
못 받은 것만 붙잡고 있었다니!
>>참으로 부끄럽네요.<< 
제 관념이 한 짓이 훤히 보여, 확 분리가 되네요.

이제 사랑 받은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
좋은 감정을 올려서!
 (사랑 느끼니 좋아좋아 정말 좋아~~
   못 웃은 웃음도 좀 웃고 나서~)

<죽임당할 뻔한 나, 여자라서 열등한 나>를 볼 힘을 
불끈 솟아 나게 해 주신,
엄마! 아부지!
제 열등이를 가열차게 청산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부모님의 자랑스런 딸로 거듭나겠습니다!
고맙고! 고맙고! 사랑합니다! 

제가 이 길을 갈 수 있게 법을 만들고!
터를 닦고! 열과 성을 다해 가르쳐 주신! 
존경해 마지 않는 스승님!
그리고 도반님!
정말로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