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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아 놀자 후기


마음깨우기 명상 <245기 참가후기> 오직 할 뿐!

비디 2016-06-07 00:00

오늘 4박 5일의 일정을 다 마치고 감동과 감사 속에 서로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어느 도반님이 내 닉네임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캐롤의 주인공 구두쇠 영감 스쿠르지 이야기로 유명한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이라는 소설 속  인물에게 반해 거기서 따온 이름입니다. 어린시절 고아라서 뒤꿈치가 드러나는 헤진 신발에 씻지도 못해  더러운 때가 묻은 얼굴을 하고 지냈었지만 역경을 극복하고 따뜻한 사랑을 지닌 학교 선생님이 되었고 평생을 가족과 이웃에게 묵묵하게 사랑을 베풀어온 대장장이 조와 결혼하게 되는 인물이 비디입니다. 19세기 세계 최강의 나라였던 영국의 물질 만능주의 가치관을 대표하는 상류사회의 인물들을 비판하면서 이러한 시대에 꼭 필요한 것은 맡은 바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며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조와 비디같은 인물들이라는 것을 전하고자 했던 디킨스를 우연찮게도 혜라님과 자운님의 강의 곳곳에서 만나 볼 수 있었습니다.  한살박이 자기 아들을 게임에 방해된다고 목졸라 죽이고 태연하게 쓰레기봉투에 내다 버리는 극도로 마음이 황폐해진 작금의 시대에서 필요한 것은 나라 지도자들을 비판하고 이분법적인 잣대를 상대에게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는  마음의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하고 자유롭고 풍요롭게 살면서 사랑을 주는 줄도 모르면서 주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며  이를 위해 한 사람이라도 더 잘 깨달을 수 있도록 자운선가의 모든 분들이 온 몸과 마음을 바쳐 일하고 있노라는 말씀말입니다. 동영상에서도 뵈었었지만 직접 강의를 들으면서 내뿜어지는 뜨거운 열정과 따스한 사랑이 훅훅 전해지는 스승님들 강의는 정말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스승님들의 강의를 들을 때 가슴에서 뭉클뭉클 뭔가 뜨거운 기운이 차 오르며 움직이는 느낌이 들면서 눈물이 나고  벅찬 기분이 들었었는데  그 기운의 정체가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반했다고 해서 닉네임을 또다시  '혜라. 혹은 혜라 *'처럼 바꿀수는 없으니 그냥 원래대로 해야겠지요?

 

저는 어렸을때 유난히도 부끄럼과 겁이 많아 심지어는 친척 어른들이 집에 오면 인사하기가 창피해서 농에 숨기도 할 정도였고 다른 사람 시선에 민감하게 긴장하는 아이였습니다.  자주 다투며  화목하지 못했던 부모님덕?에 자존심이 강했던 저는 친구들에게 절대 집안이야기를 포함한  개인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았고 사실상 터놓고 지내는 친구도 없었습니다. 목소리가 작아 대학 때에는 강의 출석체크시간에 대답을 해도 교수님들이 알아듣지 못해 목소리 큰 친구들이 결석아니고 왔다고 말해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식당에 가서도 수저가 부족해도 그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고 '저기요 '하고 막상 불러도 목소리가 작아 듣지 못해 뻘줌했던 적도 많았습니다. 또 남학생들이 사소한 거지만 저를 도와준다고 하더라도 절대 괜찮다고 하면서 도움 받기를 무척 꺼려했고 무언가 주는 것은 마음에서 편했지만 받는 것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하지 않고 힘들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졸업하고 트레이닝 받을때 남자 동료들이 저를 외유내강타입이라고 했었지요.

 

그런데 수행에 참석하면서 알게 된 것은 도움을 받는 것에 불편했던 이유가 외유내강이 아니라 버림받을까 두려운 에고때문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자존심이 강해서가 아니라 수치스러운 내 집안 이야기와 내 모습을 들킬까봐 두려워하는 관념때문에 터놓고 지내는 친구 한 명 없이 지냈던 것이었습니다.  부정적인 마인드의 끝판왕에 내 외모의 장점은 보지 않고 단점만 줄줄 나열하면서 엄마 아빠 닮아서 그렇다며 불평하기 바빴고 의지가 약해 작심삼일의 대가여서 자기 비하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도 내 무의식에 잠재된 열등감과 수치심 그리고 그 근간에 자신에 대한 미움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도 또한 확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뜨뜻미지근, 우유부단한 편이어서 뜨거운 열정과 화통한 카리스마 넘치는 친구들을 부러워했었고 공식적인 숙제나 일은 하지만 방학같은 자유시간이 주어지면 그저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는데 타고나기를 기가  타인의 십분의 일정도로 아주 약한 기운을 가지고 있고 온 몸의 경락이 다 막혀 거의 죽은 사람과 다름 없다는 말씀을 혜라님과 마스터님에게서 듣고  내가 왜 그래왔는지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행에 참석하기 전에 기가 잘 통하도록 운동과 몸치유를 하는 것이 좋다는 말씀을 동영상에서 듣고 기치유를 받으러 갔었는데 그 분이 제게 같은 말씀을 했었던 터라 속으로 좀 놀랐었습니다.

 

관념안에서 윤회하는 인생사처럼 결혼 후의 나의 생활은 학생때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여전히 부정적인 마인드가 강해 따듯하고 다정한 남편을 만나 사랑을 많이 받으면서도 겉으로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보였지만 나의 내면에서는 진리를 찾아헤매며  어딘가 모르게 공허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면에서  부족한부분이 많은 둘째인 아들로 인해 현재에 감사하고 즐기기 보다 미래를 걱정하며 사랑대신 근심 걱정이 일상인 나날을 보냈습니다. 결혼 후 2년이 지났을때부터 지난  15년동안 경제적인 능력을 상실한 친정부모님을 책임져야 해서 함께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막내로 태어나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상태에서 식구들 많은 집  장남에게 시집와 힘들고 지친 상태에다 중간에 남편의 외도에 사업하는 아버지의 경제적인 부침속에서 괴로와서 아빠와 자주 다투는 엄마,하루 종일 입을 열때마다 내뿜는 아빠와 시댁식구들에 대한 험담과 부정적인 언어들과 고통과 한숨을 토로하는 말들 짓눌리고 그 와중에  엄마 아빠가 다툴때 다른 집 딸들은 아빠에게 애교부리면서 중재도 잘만 하던데 너는 왜 쌀쌀맞게 벙어리마냥 입꾹닫고 있냐고 하는 말에 깊은 상처를 받았던 나, 그래서 애늙은이가 되어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고 안으로 삭이게 된 나, 아빠를 비롯 여러 삼촌과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험담으로 주변 식구들을 아무도 존경하거나 사랑할 수 없었던 나는 엄마에 대한 뿌리깊은 원망과 미움이 컸었습니다. 그것을 평상시에는 꾹꾹 눌러놓았다가 한번씩 어느 상황, 어떤 말로 감정이 건드려지면 주체할 수 없게 터져나와 엄마에게 분노를 터트리는 모습에 남편은 깜짝 놀라곤 했었습니다. 이것을 자운님의 강의에서 공명이란 것을 설명하시는데 너무나 내 모습과 닮아있어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었습니다.

큰 문제가 생기기 전에 내 인생에 소소한 문제들을 통해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여전히 부모님에 대한 원망을 가슴 깊은 곳에 쌓아두고 사랑없이 부모님을 눈치보게 만들고 따뜻한 말보다는 형식적인 인사를  하고  지냈던 세월들이었습니다. 결국에는  4년전부터  우주는 내게 고통과 시련으로 포장한 큰 선물들을 연속해서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경제적인 면에서 남편보다 벌이가 좋았던 나는 남편 기를 살려준다는 표면적인 이유와 재정적인 관리를 할 만한 능력도 전무했기에 모든 것을 남편에게 맡겨 심지어는 나는 통장번호도 모르고 내 사업장 번호도 남편은 외우는데 나는 전혀모르는 지경이었습니다. 남편은 사업하는 막내 시동생에게 항상 이런 저런 이유로 돈을 대주었었는데 믿었던 동생에게  배신을 당해 서울에 있던 아파트 , 10년간 부었던 적금과 연금, 꽤 불려두었던 주식 등 모든 재산을 동생때문에 날리고 많은빚까지 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자살한다고 소동부리는 시동생을 자살 못하게 한다고 지방에 내려가 함께 지내면서 끓어오르는 배신감과 분노에 살기를 느꼈다던 남편! 그로부터 한 달 후 완치불가능하다는 복막까지 전이된 대장암선고를 남편이 받고 , 큰 딸은 전혀 다른 인격체가 빙의됐나 싶을 정도의 심한 사춘기 반항등의 시련들 속에 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큰 문제가 없었을때보다 어려움 속에서 나는 감사를 배워가기 시작했습니다. 000 마인드 스쿨과의 만남에서 배운 긍정마인드과 잠재의식의 중요성 등을 배우고  00행원카페에서의 이 세상이 홀로그램이며 양자역학에 대한 설명을 통해 보이는 세계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나왔으며 수행은 산 속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삶 속에서 고잘미 섬공(고맙다, 잘했다, 미안하다, 섬기고 공경하기)을 하며 내 자신안에  부처가 있으니 내 자신이 무한 진리 생명으로 가득찬 무한한 능력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믿으며 마하반야바라밀 수행하라는 가르침을 배웠습니다. 또한 대형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다는 선고를 받은 남편의 치유를 위해 접했던 수많은 대체요법을 접하면서 암도 근원이 마음에 문제임을 여실히 알게 되었고 나름대로 용서와 마음을 병이 있다는 생각에 두지 않고 검사결과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지내면서 투병이 아니라 암도 친구라 여기며 지내다 보면 좋아지리라 생각하고 지내자 다짐했었습니다. 부모님에 대한 원망도 줄어 표면적으로는  용서하게 되었고 그렇게 일하기 싫던 내 직장이 오히려 감사로 다가오게 되면서 힘들긴 했지만 큰 시련이 없었던 때보다 마음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하고 감사함 속에 지내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물론 시시각각 나빠지는 남편의 병세에 두려움과 불안감이 바닥에 깔려있었지만 그런 감정들은 꼭꼭 눌러놓고 있었습니다.결국 2달 전에 남편이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되었고 마인드로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었었는데 남편이 그리되자 온 마음으로 행하지 못하고 정성다해 기도하지 못한 탓인것 같은  자책감이 올라왔었습니다. 그 무렵 00행원 카페지기님이 자운선가의 동영상들을 카페에 올리면서 정말 마음 공부 잘하신 분이라 소개하시며 꼭 볼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평소 삶과 동떨어진 수행을 주장하는 여러 유명하신 분들에게도 잘 하지 않던 칭찬을 여러번 하시는 것을 보고 그로 인해 자운선가와 인연을 맺게되었습니다. 동영상을 보다보면 말미에는 거의 4박 5일 수행참가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었는데 참가하기 전에는 어느 노래 가사처럼 ' 진정 난 몰~ 랐~었~네' 였습니다.

보현 카페와 자운선가의 동영상을 통해서 얻은 지식들이 진리이지만 이것은 모두에게 보편적인 것이고 각자 개개인의 잠재의식속의 내면을 알려 줄 수는 없을 터이기에 또한 그 무의식의 세계는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마인드 스쿨에서 잠재의식의 중요성에 대해 배웠지만 거기서 접근하는 정도의 의식은 거의 표면의식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삶을 좌지우지하는 깊은 무의식은 공부된 분이 아니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부분들이었습니다. 일대일로 만나 지도받지 않으면 죽었다 깨나도 모를 수 밖에 없는 것들이었기에 직접 와서 수행참가를 할 것을 입이 닳도록 말씀하셨던 것을 정말 피부로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인정하고 싶지 않고 외면하고 싶은 내 무의식을 받아들이고 풀어내는 과정 속에 내가 왜 이런 인생을 살아왔던 가에 대한 해답이 마치 퍼즐이 맞춰지듯 딱 맞아 떨어졌습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뚜렷하게 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두려움없이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지 않고 내 인생의 주인된 느낌으로 현재 이 시간을  진정으로 즐기고 행복해하는 나를 보게 되었고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청백팀 게임에서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온 몸으로 응원하고 적극적으로 임하는 나, 춤수행시간에 시선 개의치 않고 미친 듯이 내 몸에 맡기고 춤을 추는 처음보는 나, 생전 처음으로 크게 소리 질러 목이 쉰 나, 이런 처음보는 나를 발견하는 시간들 속에서 처음보다 얼굴이 많이 밝아졌다는 이야기를 마스터님과 푸도님 및 여러 도반님들에게 듣게 되었지요. 사족이지만 전 처음에는 푸도라는 고정 닉네임을 가진 분이 계시는 줄 알았습니다. 수행후기에서 푸도님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많이 봐서 푸도님이라분은 동영상에도 안 나오는데 어떻게 생기신 분인지 꼭 만나보고 싶었었는데 사실을 알고 속으로 얼마나 웃었는지요.  참고로 남편 장례를 치르면서 많은 분들이 찾아오셨지만 선생님이었던 제 남편의 10년도 넘은 제자들이 심지어 오래 전 제자가 출장을 가서 올 수 없게 되자 아버지가 대신 찾아와 주었고 아이들에게 참 좋은 분이었다고 말해주어 감동의 시간이기도 했던 장례식에 제 직장과 관계된 단체와 동창, 제 친구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연락하지 않았으까요. 아니 연락못했다는게 더 맞을 겁니다. 소심하고 두려움 덩어리인 나로서는 연락안하는게 훨씬 편했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로 지독한 관념속에 있던 빠져있을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여기서 알게 되었습니다. 자운님, 혜라님, 환하게 빛나는웃는 얼굴로 편하게 상담해주신 젬마 마스터님, 정말 고생하신 어여쁜푸도님 모두 정말 고맙습니다.

 

마지막 날이 되자 매일 해야할 수행 목록을 말씀해주시고 꼭 지키기를 당부하신 스승님들 말씀을 듣고 조금있다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7월에 다시 찾아볼 때 꼭 약속을 지켜야 하는데 내 자신이 못 미더워 스승님 선물을 사서 내가 약속을 잘 지키지 못하면 검정 비닐 봉다리에 드리고 잘 지키면 예쁜 포장지에 드려 비닐 봉지에 드리면 달게 벌을 받겠다고 할까

그럼 내가 무서워서라도 잘 하겠지 등등의 작심삼일에 그치지 않고 잘 할 수 밖에 없는 방법들에 대한 생각들이요. 그러다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못할 것라는 걸 전제로 한 생각이구나 , 이건 본성이 하는 생각이 아니구나 하는 알아차림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끝그림을 명확하게 마음에 품자'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또한 자운님이 마지막 강의에서 연단과 같은 극기 운동을 왜 해야하는 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시는데 지금까지 들었던 그 어떤 것보다 멋진 동기부여였습니다. 정말 충분히 높아서 나를 설레게 하고 나 뿐만 아니라 내 가족을 구하고 동시에 나도 모르게 홍익인간으로 살수 있는 깨달음에 이르는 목표를 가지게 해주시고 길을 인도하여 주셔서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그리고 내겐 따라 가면 되는 혜라엄마?님이 계시니까 뭐~ ^^

 

집에 돌아와 아버지에게 인사드리며 처음으로 아버지를 안고 죄송하다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리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안으시더니 우리딸이 이렇게 앙상하게 말랐냐고 하면서 고맙다고 하셨고 엄마에게도 똑같이 말씀드리며 꼭 안아드렸습니다. 이렇게 해야겠다 맘 먹고 집에 오긴 했지만 실제로 잘 할 수있을까 어색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제 딸이 조금있다 살그머니 와서 수행참가 어땠나고 물어보는데 지금은 아이가 좋아져서 사랑한다고 표현도 하고 하지만 힘들었던 시기엔 마인드 스쿨에 보내보려고 별별 애를 써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던 아이였기에 정말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첫 하루 이틀이 지나고 나자 그 다음부터는 빛의 속도로 지나가버린 4박 5일의 시간, 벌써 너무나도 그립고 정말 꿈결같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시 찾아뵙는 시간에 숙제 잘 해가지고 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c,f- 제 입맛에 딱 맞는 제일 맛있는 식사을 만들어 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어렵게 새벽까지 쓴 글이었는데 마지막 확인 누르며 올리려고 할때 글이 날아가 버렸고 순간 올라오는 분노의 관념으로 씩씩거리다  알아차리고 다시 올립니다. 이제 연단과 올라온 분노 풀러 물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