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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 2020-02-17 00:00
사실 행스 끝나고 바로 후기를 쓰려고 했는데 행스 직후의 너무 들뜬 마음으로 쓰기보다는 행스 이후의 내 삶을 조금 더 지켜보고 쓰고 싶어서 3주라는 시간 후에 후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29살. 내 20대의 마지막 날 12월 31일에 자운선가에 입소했습니다. 사실 행스를 신청하기까지 많은 고민과 갈등, 망설임이 있었습니다. 행스 들어가기 1주일 전부터는 몸도 아프고 너무 두렵고 마음이 무거워서 행스를 취소해야 하나 정말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자운선가에 가는 것이 어찌나 두렵고 괴로웠는지 자운선가 가는 길에 시외버스도 잘못 내려 청학동 끝까지 올라가 길을 잃어버리기까지 했습니다.
행스 한 달로 나 자신을 물어뜯고 할퀴고 공격했던 이제까지의 삶이 아닌,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며 새롭게 30대를 시작하고 싶은 마음에 자운선가로 향했습니다. 자운선가에서 한 달 동안 미친 듯이 수행해서 내 관념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하산하리라는 의지를 가지고 행스를 신청했는데, 저의 이 과한 의지가 열등감에서 비롯된 탐욕과 집착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분리하는 데 행스 기간 중 3주의 시간이 걸렸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제가 행스 기간동안 얻은 가장 값진 변화였습니다.
한 달 정도의 기간이 사실 즐겁고 행복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첫날 입소하자마자 모둠별로 춤 공연을 하는데 너무 수치스러워서 다음날 짐 싸서 바로 하산하고 싶을 정도로 부정성이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수행을 2번 하고 행스를 간 것이지만 아직은 낯선 장소와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려 하니 버림받은 마음과 버림받을 것 같은 두려움이 너무 올라와서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입소 첫날인 12월 31일에 새해 카운트다운도 하지 않고 숙소에 올라가 잠을 청했는데, 잠은 오지 않고 버림받은 마음에 잠식돼 자다 깨다를 반복했습니다. 사실 행스 들어가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입소 첫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행스를 하는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올라오는 감정들을 인지하고 청산하는 것이었습니다. 밖에서 직장생활하거나 일상생활에서는 관계에서 올라오는 작은 마음들을 무시하고 살았는데, 행스에서는 그러한 마음들을 ‘진짜배기’라고 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행스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라면 바로 이 진짜배기를 피하지 않고 계속해서 마주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밖에서 생활할 때에는 마주하기 싫은 관념이 올라올 때 피하고 도망갈 수 있는 다양한 창구가 있지만 자운선가에서는 어떻게든 보기 싫은 관념들을 마주해야만 했습니다.
또한 행스에서는 4박 5일 정기수행과는 달리 스스로 관념을 인지하고 청산하는 방법을 익히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므로, 마스터님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하여 관념을 청산하려고 행스를 신청했던 저에게는 이 과정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밖에 나가서도 스스로 수행할 수 있도록 혼자서도 관념을 인지하고 청산하려고 하기보다는 자꾸 누군가가 나를 어떻게 해주기만을 바라고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의존성이 올라와서 힘들었습니다. 스스로 무언가를 알아차리고 청산하려고 하기보다는 누군가가 떠먹여주기를 바랐고, 작은 관념들을 하나씩 알아차리고 조금씩 청산하며 나아가려고 하기보다는 큰 관념만 뚝뚝 분리해서 빨리 내 삶이 변하기만을 바랐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내려놓는 데에 3주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행스를 하면서 가장 많이 알아차린 관념은 내가 얼마나 가식적으로 살았고, 내가 얼마나 나뿐만 아니라 남도 무시하며 살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행스에 와서도 겉으로는 친절한 척 착한 척 하고 다녔지만 속으로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버리며 사람들과 굳이 어울리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여기 놀러온 게 아니라 빡세게 수행하러 온 거니까 사람들과 어울리는 건 낭비야.’라고 스스로 생각했었습니다.
담당 마스터님이셨던 황준님이 상담 때 저의 이런 모습을 인지시켜 주셨고, 사실은 사람들에게 버림받는 것이 두려워서 오히려 사람들을 무시하며 먼저 버리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해주셨습니다. 사실 밖에서도 가식을 잘 쓰고 다녀서 자운선가에서도 잘 감추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마스터님께 딱 들키고 나니 들켰다는 수치심과 두려움이 올라와서 며칠 간 수치로 고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스터님이 행스에 있는 한 달 동안 ‘너는 행스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지내는 것이 최고의 수행이다.’라고 얘기해주셨는데 그 말이 머리를 정말 댕~ 쳤습니다.
밖에서 생활할 때에도 나의 시비분별심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고 가치를 매겨, 겉으로는 잘해주면서 속으로는 무시를 하고 그러면서 사람들을 거침없이 버리는 저의 모습이 자운선가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었기 때문입니다.
한 달 동안 자운선가에서 수행을 하면서 무시하는 마음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있는 이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형에게 무시당하고 물리적 폭력도 당했던 경험 정보가 있는데 그때 어린 내가 느꼈을 약자의 수치심을 인지하기 위해 마스터님이 영화 숙제를 내주셔서 영화를 봤습니다. 그런데 약자의 수치심이 느껴지기보다는 약자를 가해하는 가해자들에 대한 엄청난 무시의 마음과 피해자 살기가 올라왔습니다. 행스를 같이 했던 형과 스토리텔링 풀어내기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이 내가 형에게 당했다고 하면서 형을 무시하고, 형에게 살기를 쓰고, 형을 단 한 번도 형으로 인정하지 않는 등 형에게 엄청나게 많은 가해를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행스를 신청한 가장 큰 목적은 나 자신을 공격하고 수치주는 살기를 청산하고 싶었던 것인데, 행스 프로그램 중 솔라님 진행 연단 시간에 연단을 하는데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구역질이 나서 자세를 유지하기도 힘들었었습니다. 연단할 때의 구역질을 전에도 몇 번 경험했었는데 그때마다 이상하게 엄마가 나를 임신했을 때 이런 느낌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엄마가 아빠의 외도, 시어머니 병수발 등으로 힘든 상황 속에서도 지켜주고 낳아준 소중한 생명인데 나는 나를 이제까지 무가치하다고 공격했구나. 하는 참회가 올라오면서 미친 듯이 울었었습니다. 물론 그랬다고 해서 저의 자기공격성의 마음이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행스를 하며 얻을 수 있었던 소중한 느낌과 참회였습니다.
가장 소중한 배움은 수행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행스 이전에는 어떤 관념이 올라왔을 때 머리로 무언가를 찾기에 바빴습니다. 지금 내 관념을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얼까 하면서 혜라님 강의를 몇 개씩 찾아보곤 했습니다. 물론 혜라님 강의를 들으며 무의식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제 관념을 많이 알아차릴 수는 있었으나, 문제는 혜라님께서 말씀하시는 관념 청산 방법들을 너무나 쉽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습니다. 몇 번 해보지도 않고 ‘해봤자 별로 효과 없어.’라고 생각하며 제대로 실천하지 않았고, 관념을 한 방에 쉽게 청산할 수 있는 뭐 엄청난 방법이 없나 하고 계속 머리를 굴리기에 바빴습니다.
그리고 자꾸 누군가에게 의존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었습니다. 누군가가 제 관념을 샥~ 하고 일으켜서 쑥~ 하고 청산해줘서 하루 빨리 제 삶이 편안해지고 제 삶의 문제들이 해결되기만을 바랐습니다. 혜라님께서 강의에서 수행은 꾸준히, 소처럼 우직하게 해야 하는 거라고 그렇게 귀에 못이 박히게 말씀하실 때마다 머리로는 ‘당연하지~ 우직해야 해.’라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저는 내 삶의 오래된 문제들을 하루아침에 슉~ 하고 해결하려는 탐욕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행스 한 달을 하고 나니 이러한 부분에 대해 많이 교정할 수 있었습니다. 생활 속에서 올라오는 진짜배기 관념들을 알아차리고 청산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가랑비에 옷 젖듯이 꾸준히 수행을 이어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관념 청산을 자기 스스로 하려고 노력하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관념을 청산하기 위해 현실에서 실제 행동을 취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 배움이 행스 기간 동안 제가 배웠던 가장 값진 교훈이었습니다.
또한 4박5일 때와는 달리 행스 기간 동안은 마스터님들이 평소에 어떻게 생활하시는지를 조금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는데 마스터님들을 보면서 마음공부가 많이 된 사람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마스터라는 직함에 안주하지 않고 화장실 청소부터 시설 수리까지 자운선가의 아주 작은 부분까지 직접 다 하시는 모습과 행스들과 같이 프로그램을 할 때에도 3살 아기처럼 즐겁고 긍정적으로 프로그램에 임하는 모습을 보고 많이 감동 받았었습니다. 저도 중학교 교사로서 직업 특성상 학생들을 이끌어가야 하는 위치에 있는데, 학교나 교육현실에 대한 불평불만을 일삼거나 권위를 내세우며 학생들을 내 마음대로 끌고 가려고 했던 저를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감사한 분은 역시 담당 마스터이셨던 황준님께 많은 감사드립니다. 바쁘실 텐데 긴 시간 할애해주시며 상담해주시고, 오며가며 제가 상태 안 좋을 때마다 얼굴 살피시며 괜찮냐고 물어봐주시고, 제 작은 관념 하나하나 정확하고 냉철하게 설명해주시고, 상담 때만이 아니라 카페에 잠시 앉아 있을 때에도 저에게 필요한 조언도 해주시고, 좌절할 때마다 잘하고 있다고 다독여주시고, 응원해주시고, 가끔은 장난도 쳐주시고. 제가 행스 3주만에 2박 3일 정도 외출하고 오고 싶다는 되도 않는 소리를 할 때에도 웃으면서 잘 타일러주시고. 꼭 열심히 수행하고 성장해서 그 감사함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듭니다.
황준님뿐만 아니라 행스 기간 동안 저에게 많은 관심과 애정을 베풀어 주셨던 마스터님들께도 정말 많이 감사 드려요.
풀어내기 시간에 서러움이 너무 올라와서 누워서 꺼이꺼이 울고 있는 저에게 손을 대주시며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다독여주시던.
프로그램에 부정성이 올라와서 살기 뿜뿜 해도 웃으면서 이렇게 저렇게 청산하라고 조언해주시던.
오며가며 저에게 필요한 조언을 따뜻하게 해주시던.
식사 시간 마다 웃으면서 음식을 주시던.
잘하고 있다고 많이 좋아졌다고 옆에서 응원해주시던.
행스 기간 동안에는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작은 것들이 밖에 나와서 돌이켜보니 정말 소중한 관심과 사랑이었음을 알겠더라구요. 일일이 모든 분들을 언급할 수 없을 만큼 모든 분들이 감사했어요.
그리고 여기 실명을 언급하기 어렵지만 함께했던 행스 식구들. 너무 감사했어요. 같이 새해를 보러 갔던 것, 원각홀에서 같이 공포영화 보면서 비명 질렀던 것, 진주 시내에 가서 같이 손잡고 밤 산책을 했던 것 등 같이 생활했던 순간순간이 좋은 추억이 되었네요.
행스 끝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온 몸이 쑤시고 아프고 무거워서 거의 2주 내내 골골 거렸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좀 정신 차리고 속세에 복귀한 지 3주가 지난 지금, 행스 전후의 제 모습을 비교해 보면 우선 삶에서 올라오는 부정성들을 조금은 알아차릴 수 있는 안목이 생겼습니다. 예전에는 어떤 일이 하기 싫으면 ‘저 일은 나랑 안 맞아.’하고 너무 쉽게 제게 오는 많은 기회들을 버리곤 했었는데 이제는 이러한 부정성이 왜 올라오는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생활하면서 부정성에 휩쓸릴 때가 더 많지만, 부정성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예전과는 달리 이제는 어떤 일이나 사람에 부정성이 올라오면 ‘왜 그럴까?’하고 생각하고 제 관념에 대해 생각해보는 빈도가 늘었습니다.
그리고 현실 상황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예전에는 문제의 실제적인 해결 방법을 탐색하거나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갖가지 방법을 탐색하는 데 골몰했다면 이제는 내 무슨 관념이 이런 일을 끌어당겼는지 알아차리고 청산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하다못해 집에서 몸이 너무 무겁고 지칠 때 예전에는 ‘잠을 잘 못 잤나?’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수치 에너지가 만땅으로 올라와서 몸이 무겁구나.’하고 관념으로 인지하고 에너지를 빼기 위해 운동하거나 몸 치유를 하기 위해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물론 관념에 휩쓸려 그냥 누워있을 때도 많지만요...
며칠에 걸쳐 후기를 쓰다보니 생각보다 글이 꽤 길어졌네요.
행스를 통해 배운 것도, 감사한 점도 더 많지만 이상으로 제 후기를 줄이겠습니다.
제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지만,
언젠가 수행에 대한 지금의 믿음과 희망이 흔들릴 때 이 글을 다시 읽으면서 마음을 다잡고 싶어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자운선가를 만나고 받았던 가장 값진 선물은 나도 내 삶을 진짜로 바꿀 수 있겠다는 희망입니다.
지금의 이 희망, 놓지 않고 열심히 수행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