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딸이 소원이라는데 그것도 못 들어줘?"
일주일 전 저녁, 아내의 이 말 한마디에 결국 이 핑계 저 핑계로 미뤘던 영체마을 마음깨우기 프로그램에 난생 처음 참여하게 됐다.
젊은 날에는 내 마음 들여다보기 싫어서 도망다니다가 또 40대 나이에는 그 놈의 마음을 보겠다고 난리부르스를 떨었지만 결국 보지 못 했던 그 마음을 혹시 찾을까 그렇게 3박4일의 여정을 떠났다.
"그래. 일단 가서 구경도 하고 몸과 마음 좀 쉬고 오지 뭐" 늘 그랬듯이 관찰자 모드를 유지한 채 처음 들어선 영체마을.
그동안 아내와 딸이 이곳을 올 때마다 운전해 줬던 터라 낯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새로운 사람들을 보니 다시 긴장모드가 켜지고..
셋째 아들과 함께 도착한 그 곳에서 마중 나온 딸과 반갑게 조우하고 접수하러 들어오니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내가 담임을 했던 아이, 수지와 그녀의 아빠였다.
반가움보다 먼저 든 묘한 감정, 수치심을 억누르고 애써 반가운 인사를 하고 강의를 들으러 갔다.
혜라 님의 강의는 카리스마 넘쳤다는 정도의 느낌이었고 나는 다 아는 내용이지만 참 재미있네 하는 정도의 교만함과 고집으로 일관했다. 이미 여러 강의를 통해 들었던 그 내용. 옛날 그토록 내 마음 때문에 힘들어서 찾아 헤매며 공부하고 들었던 그것들.. 딱히 다를 것은 없었고 그 이후의 프로그램도 예상(?) 범위 내의 내용들이었다.
오히려 프로그램 중 울부짖으며 소리치는 사람들에게서 수치심을 느끼고, 난 소리를 내기는커녕 시간아 빨리 가라 속으로 외쳤다.
아이스브레이킹 시간에 섹시 댄스를 계속 춰야 했던 상황도 재미는 있었지만 so so.
둘째날은 조금씩 다른 기분이 들었다. 이공간에 익숙해지고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터라 절도 배우고 강의를 듣고 뭐..예의 그 울부짖음도 거부감이 좀 더 줄어든 채로 견딜 수 있었다.
상담은 마스터의 따뜻한 분위기 탓인지 만족스러운 느낌이었고, 마스터의 과제 탓에 프로그램 중에도 한가지 마음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릴적 아버지를 떠 올리며 그때 그 어렸던 내 감정을 떠 올리려 했지만, 여전히 나는 그 상황에 대해 관찰자였고 나로부터 타인이었다.
뭘까? 내 무의식을 깊게 가로막고 있는 이것들은..
머리로 이해한들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아니 도무지 느낄 수 없는 이 마음들은..
셋째날이 되니까 좀 더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그만큼 이 곳이 익숙해진 탓이겠지.
그러던 중, 혜라님 강의가 나를 흔들었다.
처음에는 누군가에게 수치를 준다 생각했지만, 그게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느끼며 전율이 올랐다. 내 안의 수치심은 늘 타인들의 수치 상황조차 견디기 힘들어 피하게 했는데, 오늘은 달랐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는게 무엇인지 처음으로 보게 됐다.
그 강의 내내 마음 한구석 남아 있던 이 곳에 대한 의구심을 말끔히 걷어낼 수 있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이 내 온 몸을 감쌓다. 내 고집과 교만을 박살내 버렸고 막연하지만 드디어 '마음으로 가는 길'이 보이는 것 같았다.
마스터 님과의 면담에서는 차마 말하지 못 했던 수치들을 얘기하며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여전히 머리와 관념으로만 깨달았다 생각하고 있었지만 전혀 보이지도 않고 열 수 없었던 내 마음.. 마음을 볼까 두려워 도피했고 수치와 두려움을 들킬까 머리를 굴리며 포장했던 지난날들을 떠올렸다.
그날, 난 타이어를 두들기면서도 소리 지르지 못 한채 중얼거리기만 했지만 그래도 내 마음과 감정의 소리를 희미하게 낼 수 있었다. 생각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낀다는 것, 머리에서 마음까지의 거리가 우주 끝 만큼이나 멀구나..
그래도 그날 밤 딸에게 데이트를 청하고 마음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좋았는지..
나도 언젠가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울음을 울고 싶고 내 무의식 속에 묻혀 있는 내 마음들을 꺼내고 싶노라 딸에게 고백했다.
마지막날, 얼떨결에 소감도 말하고 노래도 부르게 되는 행운을 얻었지만 그건 3박4일 동안 내가 느끼고 품고 가는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수행한 선배들에게는 유치한 표현이겠지만, 희미하나마 끊겼던 길을 찾아낸 기분이다.
다른 분들은 그렇게 긴 시간 죽어라 두들기는 마음의 문을 이렇게 한두번 똑똑 해서 열리리라 생각지는 않는다.
그래도 한번 두번 이 길에 나서다 보면 나의 문 두드리는 소리도 커지고 내 마음의 문 한구석이 조금 열릴 날이 오지 않을까. 이 정도의 희망을 품게 된 것만으로도 이번 마깨명은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
그동안 내 옛날을, 내 상처를 외면하고도 잘 살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을거라고 나를 속이며 살았다.
마치 예수님이 수난 전날, 피하려고 했던 그 독배처럼 우리는 그 누구도 이 독배를 피해서는 부활에 이르지 못한다는 그 진실이 여전히 두렵지만..
두려움, 수치심 그리고 느끼지 못 할 정도로 내버리고 애써 도망쳤던 내 마음들을 조금씩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3박4일 함께 했던 입문자들, 같은 방에서 얘기 나눴던 분들 그리고 수지와 그 가족들고 함께 해서 기쁜 마음.
수고해 주신 마스터님들, 특히 면담으로 절 힘내게 해주신 황 준 마스터님께 감사.
딸을 비롯해서 아내와 두 아들에 대한 고마움은 뭐..어찌 이 짧은 글로 담을까.
p.s
1. 저는 아직도 엄마라는 단어에서 보통의 사람들이 느끼는 그런 애뜻한 감정들을 느끼지 못 합니다. 그래서 혜라엄마라는 표현이 어렵네요.
2. 노래 부르던 순간 절 감싸줬을 때 흠칫 놀라고 경직된건 '여자로 느껴서'가 아니라 제가 누군가의 따뜻한 격려나 배려에 익숙치 않아 늘 경직되기 때문입니다.
3. 아무튼 결론은
혜라님! 고맙습니다! 이런 길을 열어주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