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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아 놀자 후기


마음아 놀자 278기 반본체험보다 더욱 값진 체험

ㄴ ㅏ 無 2018-01-19 14:00

 

작년말 있었던 반본수행 후기를 한달이 지난 이제서야 후기글을 올리네요..

 

이때껏 자운선가의 모든 수행들이 저에게 특별하고 대단하였지만.. 이번 반본수행 만큼은.. 

제 인생에 있어서.. 그리고 자운선가에 대해서도.. 너무나도 큰 영향을 받은 수행 이였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마음속에 품고있던 자운선가에 대한 부정성과 의심이 모두 사라지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그 부정성과 의심때문에 그동안 저에대한 이야기를 후기글로 한번도.. 그리고 조금도.. 

언급하지 않음을 진심으로 후회하고 반성하며.. 후기글을 올려보겠습니다..

 

먼저 저는..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해서.. 무언가를 결정할때 조언을 들을만한 인맥도 없기에..

그래서 무언가가 맞는지 틀린지는 남들말을 듣기보단..

제 두발로 직접 가서 저의 귀로 듣고 저의 눈으로 보아서 그것이 맞는지 틀린지..

옛날말로 "그것이 똥인지 된장인지"를 직접 맛을 봐야지만 알수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 제가.. 불교나 기독교외..

종교의 형태를 가진 모든단체를(가끔은 불교나 기독교 조차도..) 사이비라고 부정하던 제가..

2016년 3월 자운선가 초참을 하고..

여태껏 살면서 내가 그렇게까지 행복감에 젖은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더없이 황홀함과 기쁨을 느꼈고..

첫수행 4박5일 마지막날.. 이곳 수행자들이 아닌 일반인들에게 말하면 절대 믿지않을.. 

제 평생 잊을수 없는 "견성체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자운선가를 그저.."스트레스 해소" 하는 곳.. 그이상 그이하로 보지 않을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운선가 수행을 하지 않았을때도.. 두눈을 의심하게 하는 크고작은 어떤 체험들과 몸반응을 해왔었고..

기독교와 불교의 가르침은 좋아했지만.. 형식상으로는 종교를 믿지않는 제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불가피하게 난생 처음으로 이곳 수행단체를 접하게 되었지만.. 

이런 수행단체에 대해 그동안 저 자신도 나쁘게 바라봤었고.. 세상의 인식또한 안 좋았던 영향이 컸기 때문입니다..

"멍청한 사람들보다 오히려 똑똑한 사람들이 그런데 더 잘 빠져든다~" 니..

"그곳 사람들은 사람 홀릴정도로 말을 정말 잘한다~","사이비인걸 알면서도 빠져버리게 만든다.." 등등  

사기로 남 등 쳐먹고도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못느끼는 인간들이 판을치는 요즘같은 세상에..

처음부터 이곳을.. "완벽하게 믿어서는 안된다~!"라는 마음으로 이곳의 수행에 임했습니다...

흔히.. 데일데로 데여서.. 무언가를 쉽게 믿지 못하는.. 저도 요즘 현대인들의 인식과 다를바 없는 사람입니다..

더욱이.. 수행 초창기때 저의 눈엔.. 이곳 자운선가는 종교를 사업화 하는곳으로 보였고.. 

"마음"에 대해서.. 거기에 "깨달음"을 가르쳐 주는곳 이라는데..

지금까지 세상은 그런 가르침을 "제대로"가르쳐 주는곳으로 소개 되는 곳 보단..

영리목적으로 틀린데 맞다고 어거지로 수행자를 세뇌시키며..

"사이비"란 형태로 뉴스나 시사저널 프로그램에 소개 되는것이 더욱 흔한일들 이였습니다..

그런 단체로 인해 "인생이 변했다~!"는 긍정적인 소식을 접하기 보단..

패가망신 당한 사연들을 더욱 많이 접하였구요..

(비록 자운선가도 안티들로 인해 명성에 흠짓이 났지만..

저는 지금 이수행을 망설이는 분들에게 분명하게 말씀 드릴수 있습니다..

제가 2580에 보도되기 이전에 자운선가 알게되고 수행을 받았던 것이..

제 인생에서 무엇과도 바꿀수없는 최고의 행운 이였습니다.)

 

그렇게 이런 수행단체를 마음속으로 강하게 부정을 하면서도.. 제가 자운선가에 오게된 계기는..

괴롭고 버겁기만한 저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제가 할수있는 것들은.. 전부 다 시도해 보았습니다만..

그 어떤 노력으로도 제가 처한 상황들은 도무지 바뀌질 않았었고.. 이곳.. 지운선가에 오는것 말고는.. 

다른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운선가를 오기전 저의 집안 상황들은..

가정에 충실하지 않으셨던 아버지와 말로는 꺼낼수 없을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었고...

외도로 집을 나가셨다가.. 바람난 여자에게 뜯길데로 다 뜯기고서 집으로 다시 돌아오셨는데..

집으로 돌아오신지 얼마 안있어.. 분노성 우울증과 감기증세로 찾아간 병원에서..

간암 3기에 당뇨합병증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곤 5년간의 투병 생활을 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2년전부터 급격히 증세가 악화되었고..

간성혼수 증상(간성뇌증이라고.. 간 기능이 제대로 못하게 되면서 몸에 차있는 암모니아를 해독 못하여 뇌로 가버리게 되는데.. 그때 증상이 모르는 일반인이 보았을때는 치매 같기도 하고.. 술에 만취한 상태로도 보입니다..)과 함께.. 

시한부를 받아 들이시지 않으셨던 아버지는..

더이상 진료도 거부하시고 병동내에서 난동을 부린게 소문이 나서.. 

간병인들 조차도 아버지의 간병을 거부하게 될정도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컸었던 저희 가족들중.. 

몸으로도 아버지를 감당할수 없는 누나와 어머니는 직장등의 문제로 아버지의 간병을 원하지 않으셨었고..

그때부터 제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버지를 간병하게 되었습니다..

 

무언가를 해볼려고해도 번번히 실패를 하고.. 번듯한 직장도 없고.. 그렇다고 한직장을 꾸준하게 다니지도 못했던.. 

나이 서른이 넘어서도 모아놓은것도 없이.. 무엇하나 이렇다하게 내세울것도 없던 제가..

물려받을것도 없이.. 오히려 집은 빚이 있었고.. 더욱이 외도로 집까지 내팽겨쳤던 아버지를 간병한다는 것이..

머리로는 "그래도 나를 낳아주신 아버지 시니깐.."이라고 수천만번을 되뇌였어도..

마음으로는 원망하고 증오하면서.. 괴로운 마음으로 2년간을 아버지 간병을 하였습니다..

(수행전에는 원망하고 증오만 해왔던 저의 아버지 이지만.. 자운선가를 알게됨으로써..

그때 아버지가 왜 그러셨는지.. 왜 병이 나셨는지.. 그땐.. 무능하게만 보였던 저희 아버지가..

얼마나 괴로웠었고 힘겹게 살아오셨는지를.. 뼈져리게 알게 되었습니다..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요..

이 후기글을 쓰면서도.. 지난날들 돌이켜 보면서도 많은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어떻게 살아오신지를요.. 언젠가 제가 이 공부가 더 되어서..

저희 아버지에 대해 다시 말씀드릴수 있는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그렇게.. 제가 간병하고 2년후..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저는 집안의 가장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간병을 하면서.. 수입이 없었던 저는 호텔종업원으로 힘들게 일하시면서 얼마안되는 월급으로 생활비에..

빚까지 갚으시는 어머니에게 도저히 손을 벌릴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간병으로 한달동안 일해서 월급받는 직장은 못다니고..

보험비 때문에 병원에서 보름간은 입원하시고 보름간은 퇴원하셔야 하시기에.. 

아버지가 집으로 퇴원해 있는 보름동안은 직업소개소를 다니며 일하던 곳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신후 본격적으로 팀에 들어가서 일을 시작하였지만.. 역시나 사람들과의 부딪침을 견뎌내지 못하였고..

오히려.. 예전보다 더 사회생활에 적응할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다시 새롭게 시작할수 있을꺼야" 라는 마음으로 버텼었는데.. 그마저도 안되니..

이젠.. 술 없인 하루도 버틸수가 없었고.. 가만히 있기만해도 마음이 더욱 괴롭게만 되어있었습니다..

정말 죽고싶었고.. 죽는것 말곤.. 더이상 살아갈 방법이 전혀 없다고까지 생각 했습니다..

어떤 노력을 하여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 괴롭기만한 현실.. 세상 등지고 무심하게 죽자니..

그동안 고생만 하셨던 어머니를 남기고 나쁜마음 가질수 없었던 저로써는..

우연히 보게된 혜라님 동영상 강의 몇편만을 보고서.. 마지막 희망으로 찾아온 자운선가에 대해 마음을 열기란..

첫수행후 2년가까이 수행을 하였지만.. 그럼에도 정말 조심스러울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번 반본수행을 하기전까지는요..

 

그렇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다음해인.. 2016년 3월.. 239기로 초참을 하고서..

그당시 이곳이 사이비든 뭐든지간에 첫수행 이후 살면서 처음 느끼는 행복한 마음에 바로 행복학교에 입소하고 싶었지만..

안티사건도 있고하여 거의 1년만인 2017년 2월말 "돈관념"으로 재참을 하였습니다.

초참하고 저의 상황이 분명 바뀐 경험도 있었지만.. 재참때도 너무나도 감동을 하여 행복학교 입소를 하였고.. 

3개월을 자운선가에서 보냈습니다만.. 수행후 현실로 돌아왔을때 자운선가에 있을때와 현실과의 괴리감이 너무나도 커서..

자운선가에 대한 부정과 의심을 풀수 없었습니다..

이 부정성 때문에 지난시간 수행전 제가 처했던 집안상황과 저의 처지들을 쉽사리 꺼낼수가 없었습니다만..

지금은 저의 가족들과 집안분위기 뿐만 아닐라.. 저 자신까지도.. 너무나도 변했습니다.. 마법같이 순식간에요..

어떻게 변했는지.. 조금은 말씀을 드리고 이야기를 이어가는게 나을것 같네요..

 

먼저.. 작년 반본수행 마치고 퇴소하는 10일날 핸드폰을 켜자말자 저희 어머니에게서 온 카톡입니다..

 

 

 

 

(핸드폰을 받고서.. 오랫만에 뵙는 자운선가 도반님들과 인사를 하고..

집에 가는길에 하르방님과 까만발톱님 공항까지 모셔 드리고서 톡 드리느라고 어머니께 답장이 좀 늦었네요..^^)

 

그리고.. 그날 찍은 저희 가족사진 몇장 올려 봅니다

 

 

 

 

 

 

 

그날 찍은 사진들중 몇장입니다..

모르는 분들이 보시면.. 이 사진은 "그냥.. 가족사진 이잖아..?" 하실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지난시절 만나기만 하면 서로가 불편하고 괴롭기만했던 우리 가족들이.. 

차라리 "타인"보다 못했던 우리 가족이.. 이렇게 웃고 있습니다..

 

혹시 주윗분들중 가족중 한명이라도 중환자가 있었던 집안을 보신분이 있으시다면 아실겁니다.. 

그 집안은 기웁니다.. 중환자가 있는데 가정이 온전한 집안은 거의 보기 힘듭니다..

더군다나.. 긴시간동안 가정에 충실하지 않으셨던 아버지와..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장남이 있는집은 더욱이요..

저희집이 그랬습니다..

 

그동안 저희 집안을 옆에서 쭉~ 지켜 보아오셨던 분들이 계셨다면..

그 분들도 이 사진이 안 믿기실겁니다.. 지금 제가 보고 있어도.. 안 믿기는걸요..

 

12월 반본수행전.. 11월 부산지역모임에 참석 하셨던 도반님들은 다 기억하실 겁니다..

그때 저희 누나와 관계가 많이 안좋았고.. 저의 미움을 너무 건드려서 정말 힘들다고..

그리고 이번 반본수행에 참가한다고 하니..

그날 모임에 참석했던 아르케누나는 저한테 지금 제 상태가 반본수행 할 정도가 아니라며..

일반 프로그램으로 참가해서 풀어보기를 권유 하셨을 정도셨습니다..

(내년(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일을해야 하기에.. 올해(작년)만큼 자운선가 수행을 참가할수 있을지 알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르케누나가 다음 반본수행에 참가하라는 말씀에도.. 언제 여유가 될지 모르니..

"반본수행법 이라도 알고가자"는 마음으로 반본수행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누나와는 어릴때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부터.. 아버지가 유독 누나에게만 사랑을 주셨던 모습에 너무 샘이나서..

지금 돌이켜 보아도.. 제가 엄청 괴롭혔었습니다.. 용돈도 뺏고.. 저의 숙제도 시키고..

용돈을 안주거나 제 숙제를 안해주면 심지어 때리기까지 했었습니다.. 사춘기때는 서로가 전혀 대화가 되질 않았고요..

고등학교때까지 서로 붙었다 하면.. 고함치며 싸우기 일쑤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어릴때는 누가 보아도 너무 이쁘고 천사같이 착하기만 했던 그런 누나를..

시간이 지나서.. 제가 괴롭힌 미안함에 잘해줄려고 맛있는것 사주고.. 용돈도 주는등의 노력을 해보았지만.. 

누나는 괴롭히기만 하던 저의 모습만 기억해서인지.. 제가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든..

누나와의 관계는 좀처럼 나아지질 않았습니다.. (더욱이 저희 누나는 전형적인 A형입니다..)  

서로 남처럼.. 없는사람처럼 대하는게 관계의 최선일 정도였습니다..

행복학교 있으면서 몇번의 통화로 평범한 오누이처럼 대화를 했었지만..

퇴소하고 얼마안있어 또다시 사이가 어색해졌었습니다..

싫은건 억지로라도 좋은척 못하는 그런 누나가.. 저와 같이 있는데 저렇게 웃고있네요..

(더욱이 저날 이후부터 그전엔 저와 같이 있어도 저한텐 좋은말 한번 안걸던 누나가..

이젠 저에게 애교부리며 부탁도 하고.. 오히려 누나가 저한테 맛난것도 사주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이 사진이 아버지 돌아가시고 첫 가족사진입니다..

아버지 생전에도.. 유치원 다니기 이전때 찍은 가족사진외엔.. 같이 찍은 사진이 단 한장도 없었습니다..

그만큼 가족간의 불화가 심했습니다.. 그렇기에 저에겐 너무나도 귀하고.. 기적같은 사진입니다..

 

이날 기적같이 변한 가족들과 최고의 하루를 보내게 되면서..

그리고 반본수행후 한달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그날 당일 만큼은 아니지만..

예전보단 많이 좋아진 집안 분위기가 유지 되면서..

그동안 이곳 자운선가가 사이비라면.. 언제라도 발길을 돌릴려고 했던 제가..

그래서 이 수행에 한발만 담그고 있던 제가.. 이젠 두발을 모두 담그고서..

이제껏 가져왔었던 자운선가에 대한 모든 부정과 의심을 떨쳐버릴수가 있었습니다.. 

 

 

참고로.. 혜라님 강의에서 집이 화목하면.. 반본인가를 받은것리라고 그러셨는데...

사실.. 저는 수행참가때 반본명상을 할수가 없었습니다..

에너지가 꽉 차서.. 반본명상은 커녕.. 합일조차도 수마가 와서 안되었습니다..

(반본수행 첫날 신념님께서 반본명상법 설명하실때.. 신념님께서 존다고 지적 받았던게 바로 저였습니다..^^;;)

 

반본수행때 저는 젬마님이 재참때부터 인지해주셨던 태아때 겪은 "수치받은 살기"를 풀었습니다..

어머니가 저를 임신하셨을때.. 아버지가 어머니를 발로차고 욕을 하셨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난날.. 제가 사회생활에서나 대인관계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였던..

자운선가가 아니였다면.. 문제의 심각성도.. 문제의 원인도 몰랐을 "수치받은 살기"라는 관념을

이번에 제대로 인지하고 "수치받은 살기"를 풀게 되면서..

그동안 저와 가족들의 삶이 힘들었던 이유를 분명히 알게되었습니다..

조심스럽지만.. 저의 지난시간들 이야기를 꺼내봅니다.. 

 

 

 

부끄럽지만.. 20대때 저의 손입니다..

이것보다 손이 더 개판 이였을때가 많았는데.. 사진으로 남긴건 이것 한장입니다..

(멋으로 찍은것이 아니라.. 두번 다시는 사람을 때리지 않겠다는 각오로 남긴거였습니다..

이 사진을 찍은날은.. 제 인생 최고로 괴로운 날중 한날 이였습니다..)

 

20대때 저는.. 이 손이 나을만하면 싸우고.. 또 다치고.. 나을만 하면.. 또다시 싸우고 다치고..

지금와서 말하지만.. 저는 분노조절장애로 인한 대인기피증에.. 사회 부적응자 였습니다..

 

이 수행을 알기전인.. 고등학교시절.. 학교가 워낙 문제아가 많은 학교인지라..

쉬는시간이면 교무실이 뻔히 보이는 운동장이 전교생의 흡연장이 되었고..

심지어 화장실과 교실에서 조차도 학생들은 담배를 피웠습니다..

선생님께 욕을해서 퇴학당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선배들은 졸업하면 조직폭력에 스카웃 되었다며..

검은차에 검은정장 빼입고 졸업하던 모습들이 제가 고등학교시절 보았던 흔한모습 이였습니다..

 

중학교때까진 교실에서 연습장에 만화를 그리며 누가 괴롭혀도 싫은 소리안하고 가만있었던 제가..

고등학교에서는 약하다고 한번 찍히면.. 졸업때까지 병X 취급당하며..

중학교때 괴롭힘과는 비교할수 없는 수모를 당해야만 했습니다..

누군가 시비를 걸거되면 피하거나.. 욕짓거리로 싸움을 끝내버리면 그또한 두려움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져서 

같은 또래들에게 병X취급 당했기에.. 누군가 싸움을 걸면 치고박고 싸워야 했고.. 싸웠으면 이겨야 했습니다..

(그래서 자운선가에서 처음 풀어내기를 할때는.. 욕으로 싸움을 해본적이 거의 없었기에.. 

제 입에서 나오는 어설픈 욕 실력에 열등감도 많이 올라왔었습니다..)  

 

처음엔 그런학교 인줄도 모르고 친구들과 재미삼아 들어간 써클이 불량써클이였고..

인사를 제대로 안했다느니.. 써클 청소를 안했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일주일에 적으면 5일 거의 6일을 맞고 지냈습니다..

남들은 군대에서도 당할까 말까한 줄빠따를.. 저는 고등학교때부터 일상 이였습니다..

선배들이 무서워 누구하나 신고하는 사람없이 매일같이 어이없는 트집으로 선배들에게 매일 맞다가..

우연히 미술시간에 정밀묘사를 한것이 미술선생님 눈에띄어 저는 미술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미술선생님이 장교 출신이라서.. 학생들을 주먹으로 때리고 이빨을 부러뜨려..

학부모님과 합의를 보시곤 하셨던 선생님이셨기에..

당시 선배들은 학생주임보다 저희 미술선생님을 더 무서워 했었습니다..

그렇게 당시 저의 은인이신 미술선생님의 빽으로 불량써클에 있다가.. 미술부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미술부에 들어가서 저도 처음으로 제밑의 후배들을 두게 되었습니다..

미술부도 선배들이 불량써클 만큼은 아니였지만.. 후배들 교육차 구타가 있었습니다..

(그땐.. 후배교육을 OT(오리엔테이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제밑으로 후배들을 형식적으로 몇번 때렸었는데..  

12명의 후배들중 10명이 저로인해 전학을 가버리게 되었고.. 성적등 조건이 안되어 전학을 못간 후배두명은

그후배 담임선생님과 학생주임 으로부터 애들이 나로 인해 "정신과 진료를 받을 정도"라며..

정학이나 퇴학이라는 징계대신.. 졸업때 까지 그 후배들에게 접근금지 하라고 하셨던게.. 시작 이였던것 같습니다..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하기 했던게요.. 그리고 분노조절장애도 이때부터 시작 되었던것 같습니다..

(졸업후.. 저로 인해서 전학간 후배들 생각에 죄책감이 많이 올라왔었는데.. 

훗날 그 후배들은 다행이도 전부 부산에서 이름대면 알아주는 공고나 인문계, 예고로 갔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고..

지금은 이름도 없어진 제가 다닌 고등학교를 졸업한것 보다는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고서야

죄책감이 많이 사그라 들었습니다..)

 

저로인해 정신과 진료를 받는 후배에게 졸업때까지 접근금지를 받았을때.. 저는 그게 이상한 거라고 생각을 못했습니다..

군대시절땐.. 탈영했던 후임녀석이 엄중하게 처벌받지 않고 간부들의 진급문제로 쉬쉬거리며 녀석을 조심스럽게 대하자..

그 후임녀석이 그걸 빌미로 고참 알기를 우습게 알고 근무도 태만하게 하길레.. 군시절 처음으로 심하게 때렸었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복싱골절로 기브스를 했었는데.. 평소에도 군복무를 제일 꼴통짓으로 하던 후임 한놈이 이 문제로 대들자.. 

기브스를 풀고서 부러진 손가락을 부여잡고 또 그 후임녀석을 때렸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게 이상한건줄 몰랐습니다..

 

자운선가에선 "눈돌아가면" 이라고 표현을 하셨는데.. 정말 저는 눈돌아가면..

상대방이 덩치가 크던 작던.. 유단자던 아니던.. 쪽수가 많던 적던.. 심지어 상대가 조폭이던지 아니던지.. 상관않고..

빡치면.. 물불 안가리고 달려들었고.. 저한테 맞기전엔 의기양양하고 저를 막대하던 사람들은..

저한테 맞고나서는 제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던 사람들이 없었을 정도였습니다..

얼굴을 못 알아볼 정도로 그렇게 심하게 맞았던 사람들에게서.. 병원비 달란 말 한번 못들었습니다..

그런데 맹세코.. 제가 먼저 상대방에게 먼저 시비를 건적이 단한번도 없었고..

몇번의 시비를 받았을때 즉각적으로 싸운적도 없었습니다..

싸움을 최대한 피할려고 참고 참다가.. 도저히 이건 아니다 싶을때 결국은 폭발하게 되었는데.. 

그렇게해서 누군가를 때려도.. 기분이 좋았던적이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저는 조폭도 되기싫었고.. 전과자는 될 마음도 없는 사람입니다..

비록.. 좋은 고등학교를 못 나오고.. 이런 성격을 가졌지만 저는..

떳떳하게 일하고 벌어서 번듯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어떤일이든 일을 열심히하고 잘해서 실력으로 올라서고 싶었지..

일도 못하고 안하면서 저를 "힘으로 함부러 못하게" 만드는 양아치처럼 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자운선가를 오기까지.. 가장길게 종사했던 일은 건설현장 인부였습니다..

일이 험해서인지.. 다른일들에 비해서 일하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거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앞서 말씀대로 일을 열심히해서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었기에.. 일을 시작하면 정말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만..

이곳은 저의 가치관과는 정 반대인 곳으로 보였습니다..

군말없이 뺑끼 안부리고 열심히 일을하면.. 오히려 "개"나 "소"대하듯 막 대하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 성질한번 부리면 꼬리 내리고선..

내가 정말 실수하고 오히려 일을 안해도 "오냐오냐"하는 이 바닥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제가 바라봤을때.. 성실하게 일하면 막대하고..

성질대로 막나가면 오히려 인정해주는 이곳이 도저히 적응이 안되었고..

정말 솔직하게는.. 적응하기도 싫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양아치 같이 굴어야 인정해주는 곳 같았습니다.. 

(자운선가 수행법을 몰랐고 제 안의 관념을 몰랐을땐.. 바깥상황을 보며 이렇게 생각을 했었드랬습니다..

그래서 그 상황이 끝나지 않고.. 사회생활 시작한 이례.. 지금까지 악순환이 계속 되어 왔음을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자운선가 수행을 알기되어.. 정말 다행입니다..)

 

그렇게 내 행실이 맞았든 틀렸든간에..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항상 부딪치면서 다른공정으로 일을 바꾸기 일쑤였고..  

서른이 넘은 나이에 안그래도 또래들에 비해 늦을대로 늦은 저에겐 정말 절실하게 일을 꾸준히해서 돈을 벌어야 되는데..

항상 사람들과 트러블이 일어나니.. 남의 심기를 거슬리게 하는것이.. (이 수행의 "무의식"과 "파동"을 몰랐던 저는..) 

저의 언행에 문제가 있는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수행법의 정반대로인 

다른 사람들이 저의 이 "살기"를 안 건드리게 하는 방법으로.. 저는 저 자신을 낮추는 방법을 선택했었고..

주위 사람들이 저를 보고.. "너무 깍듯하다","너무 예의바르다"말이 나올 정도로 저의 언행을 고쳤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저를 낮추며 상대방에게 더욱 숙여보았는데도.. 사람들과의 부딪침은 멈추질 않았습니다..

제가 예의를 갖추고 더 낮출수도 없이 공손하게 대하는데도.. 저를 막 대하던 사람들은 어김없이 있었고..

이젠 부러지고 깨졌던 주먹이 많이 아물어서인지.. 빡쳐서 사람을 한대만 때려도

저한테 맞은사람들은 어금니가 갈라지고.. 최소한 뼈에 금이 갈 정도가 되어버렸습니다..

 

아버지를 간병하고 돌아가신 이후에는..

사람들과 같이 있을때.. 조금만 배려없는 행동이나 아무 생각없이 내뱉는 말들에.. 상처를 심하게 받았었고..

이제는 원인도 없고 중간과정도 없이 죽이고만 싶은 "살기"로 올라가는 저의 감정에 너무 괴로웠습니다..

예전처럼 미쳐서 사람을 때려버리면.. 정말 맨주먹으로 사람을 때려 죽일수도 있겠다는 경험을 한뒤로는..

역시나 이 수행법의 정반대로인.. 운동도 전혀하질 않고 지냈습니다..

몸에 힘이 있는 상태에서 제가 주체할수 없는 그 감정이 올라오면.. 정말 사고를 크게 칠것 같아서 였습니다..

그런 노력에도 사람들과의 관계가 전혀 나아지질 않다보니.. 나중엔 주위에 사람이 없는것이 더 편하게 되었고..

외로워도 차라리 혼자있을때 오는 차분함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은둔형 외톨이.. 이번 반본수행때 마스터님이신 젬마님과 푸도 해주셨던 영희누나가 말씀해주신 저의 별명..

"히키코모리"로 지냈습니다..

 

그렇게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면서.. 웬만한 영화와 에니메이션,드라마등은 다 보았습니다..

유명해서 흥행했던 영화들은 거의 대부분 다 보았고.. 심지어 고전명화들 까지도 닥치는대로 보았습니다..

너무 많이 보아서 제목도 기억안나는데.. 다시보면 봤었다고 기억하는 영화도 있을정도로요..

하루에 영화를 적어도 하루 한편 이상을 보았고.. 장편인 드라마나 에니메이션은 하루종일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취미가 영화관련 소품이나 피규어, 스태츄등을 모으는게 자연스럽게 되었구요..

그 당시.. 사랑과 행복은 영화나 드라마에만 있는건줄 알던 저에게..

자운선가에서 어쩌면 처음으로 사랑과 행복감을 살면서도 느낄수 있다는걸 알게되면서..

행복학교 퇴소후에는 그동안 모았던 영화 피규어등을 거의 대부분 정리 하였습니다..

이젠 영화를 보는것보다 자운선가에서 수행을 하거나.. 혜라님 강의를 보고 듣는것이 몇만배 더 감동적입니다..

(어쩌면.. 그때 보았던 수많은 영화들 덕분에.. "느끼는게 전부" 인 이 수행에서..

남자도반들 치곤 잘 느끼는거라고.. 종종 말씀을 들을수 있었던 이유인것 같습니다..

그때 보았던 영화에 나오는 배우나 감독을 외우거나 누군가에게 어떤 영화의 줄거리를 말해줄 정도로

집중해서 보진 않았지만.. 일상생활에선 전혀~~~ 표현않고.. 느끼며 살지 않았던 제가..

원각홀에서 풀어내기를 할때.. 대충 "아.. 그때 이런 상황에 이런 느낌이였지.."하고 감 잡을수 있었던게

전부 그때 본 영화들 덕분이 큰것같습니다..) 

 

자운선가에 대해서 모든 의심이 풀린 지금 에서야 말씀 드리지만..

초참하고 나서.. 그동안 혼자 지내면서 잠잠했었던 "살기"가.. 또다시 같이 일하는 사람과 부딪히며 또 올라왔는데..

화가 올라올대로 올라온 상태였고.. 그때도 사람을 치면 안된다고 생각 하였기에..

시비가 붙은 길에 방음벽으로 설치된 강화플라스틱을 주먹으로 때려 부수면서 난동을 부렸습니다..

그일로 경찰서를 두번이나 다녀오게 되었구요..

(이 사건이후.. 남밑에서 길게 일하면 3개월.. 짧으면 한달을 못버텼던 제가..

다음으로 간곳에서 저는 재참하기 전까지 거짓말 같이 반년 이상을 한곳에서 일을하고 있었습니다..)

 

행복학교 퇴소하고서도 "미움"과"살기"를 제대로 못풀고 나오니.. 초참때 만큼은 아니지만.. 마장이 있었고.. 

하는일들도 잘 안풀렸습니다.. 이런 일들을 겪다보니.. 저는.. 

"자운선가에 있을때는 정말 천국에 있는듯 좋은데.. 밖에만 나오면 지옥이 되어 버린다"고.. 

"이러면서 바깥 생활은 못하게 만들고 장기수행으로 끌여들이는건 아닐까...?" 라고

자운선가 수행법을 의심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번 반본수행으로 

그동안 어렴풋이 알던 자운선가의 가르침들 몇가지를 분명하고 확실히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지난시간 제가 자운선가를 마음 한켠에 부정하고 의심하고 있었던것이 바로.. 

저의 센관념들을 제대로 못보고 못풀어 내었음을.. 그리고

안 죽을려는 센 관념이 자운선가를 부정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을 분명하게 인지하였고..

자운선가 마스터님들께서 거듭 말씀 주신 "모든 관념은 내것이고 내안에 있는것"

내안에 있는 그 관념을 제대로 청산을 하면.. 타인이 내게 아무리 수치를주고 열등감을 주어도

내안에 "수치심"이 없고 "열등감"이 없다면 안올라 온다는 걸요..

확실히 인지한 계기가 바로 반본수행 이후 지금까지도 누나와는 트러블없이 지내고 있고..

이젠 누나가 저의 미움을 건드려도 예전만큼 마음이 불편해지지도 않음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화가 나는 마음은 나쁜 마음이라고.. 그래서 참기만 해서 저를 더욱 괴롭혔던 그 마음이 "분별심" 이였고..

심지어 정말 사람을 죽여버려도 풀리지 않았을 저의 살기가.. 태아때 받은 "수치받은 살기"였습니다..

이 센 에너지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니 자운선가를 몰랐던 그때의 저는 무기력에 매일 집에서 드러누워 지냈고..

술과 담배에 찌들어 살았습니다.. 

(이렇게 지내다 우연히 혜라님 동영상을 보았고.. 한달을 넘게 드러누워 무기력에 찌들어 지냈는데..

그당시 혜라님 동영상 한편을 보고서 정말 오랫만에 숙면을 했고 정말 개운하게 아침을 맞을수 있었습니다..

거짓말 같이 기분좋게 일어난게 그당시 너무나도 신기해서.. 일어난 그날 바로 검색으로 자운선가를 알게되었고..

처음 혜라님 동영상을 본 이틀 뒤 239기 첫수행을 참가하게 되었던 겁니다..)

 

지금도 생각해 봅니다.. 제가 자운선가를 몰랐다면..

원인도 없고 중간과정도 없이 죽여버리고만 싶은 "살기"로 바로 느껴버리는 저의 분노조절 장애가..

문제의 원인인 저의 트라우마 "수치받은 살기"를.. 더욱이 기억도 안나는 태아때 겪은일을 평생 알수나 있었을지..

그리고 짧은 시간에 이렇게까지 저의 가족과 나의 삶이 치유가 되었을지를요...

 

저는 지금 예전엔 없으면 못 살았던 술과 담배를 억지로 참아서 겨우 몇일 끊었수 있었던 술과 담배를..

작년 2월말 본격적으로 자운선가 수행을 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안피우고 안먹고 있습니다.

억지로 참는것이 아닌..  이젠 정말 술이 안먹고싶고.. 담배를 안피우고 싶어졌습니다.. 

반본수행 이후 혜라님께서 저의 "살기"가 보통 센녀석이 아니라고.. 밖에서도 열심히 수행하라는 말씀에..

군시절 이후 거의 처음으로 운동을 다시 하고 있습니다..

날씨가 추운데도 운동후 머리카락 사이로 땀이 맺히는 느낌이.. 정말~ 너무 좋네요^^

수행이후 바로 등록했는데.. 체육관이 쉬는날이 아니면 지금까지 빼먹지않고 꼬박꼬박 잘다니고 있습니다. :)  

 

하늘이 도우셨는지.. 반본수행 참가하기 몇주전에 저희 어머니가 저에게 하소연 하신적이 있으셨는데..

호텔종업원 이신 저희 어머니가 일을하고 계신데.. 갑자기 외국인 관광객이 물건등을 어머니 얼굴에 집어 던지며

알아들을수 없는 욕짓거리로 고함치며 수치를 줬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런일은 처음 겪은게 아닌.. 살면서 그런 수치를 계속 받아왔었다고..

이번에 수치받은 살기를 풀때.. 외국인 관광객에게 수치받은 그때의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풀어냈습니다..

풀어내기 하는동안 정말.. 어디서 그런 눈물이 숨어있었는지.. 정말 한참을 울면서 풀었네요..   

(참고로 저희 어머니와 누나는 자운선가 수행자가 아니시며.. 제가 자운선가 수행자인것도 모르십니다..)

 

제가 태아때 아버지께 수치받은 그때의 트라우마를 풀지 못하면.. 무의식에 저장된 기억정보가 반복된다고..

그것이 저의 삶에서 적용되었고.. 저희 어머니와..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신 저희 아버지에게도..

심지어 저희 누나와 세상사람 모두에게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것을..

 

자운선가의 가르침은 무엇하나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저희 어머니 사진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저희 어머니 표정 보이시나요..?

저를 임신하셨을때.. 아버지께 그런 수치를 당하시고도 저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저희 어머니 이십니다..

아버지의 외도로 그렇게 힘드셨음에도.. 우시면서 누나와 저 때문에 가정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신게 기억나네요..

자신도 그렇게 힘드셨을텐데.. 저희 때문에 이 악물고 살아오셨던.. 그런.. 저희 어머니십니다..

 

재참때 혜라님과 상담중에..

"이때껏 살면서 어머니께 사랑받았다고 생각나는거 있는데로 말해보세요"라는 혜라님 말씀에.. 제가

"지방으로 일을 다녀서 자주 집에 없었는데.. 매년 제 생일이면 어김없이 미역국을 끓여 놓으신것 말곤.. 없다"고...

그때 그렇게 말한.. 제 자신이 너무 어리석고.. 부끄럽게 여겨집니다..

저희 어머니는.. 그렇게 힘들고 괴로운 상황속에서도.. 저를 낳아주시고.. 길러 주셨습니다..

나의 어머니로 존재해주심 으로서도 저에겐.. 평생갚질 못할 은혜를 주셨다는걸.. 분명하게 알게되었습니다.. 

지난 괴로웠던 시간들을.. 언제 힘들었냐는듯.. 그 모진 세월을 온전히 견뎌오시면서도..

아직도 저렇게 어린아이 마냥 해맑은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오신 우리 어머니.. 그런 우리 어머니가 저는 정말 좋습니다.. 

앞으론 정말.. 어머니께 잘해서.. 저렇게 웃게만 해드릴려구요..

(그리고.. 자운선가 식당건물에 정문 계단쪽에 제가 몰래 비닐 우산을 몇번 가져다 놓은적이 있었는데요..

이번 연말에 들렸을때도 가져다 놓았는데.. 그게 사실은.. 저희 어머니가 관광객들이 놓고 가신걸 안버리시고 놔두셨다가

저희 집에 가져다 놓으셨던 거였는데요.. 처음엔 어머니 몰래 제가 자운선가에 가져다 놓았다가..

이번 작년말에 들렀을때는 어머니께서 직접 그곳에 가져다 드리라고 주신거세요..

지리산만 다녀오면.. 이상하게도 제가 엄청 착해진다고요...ㅎㅎ (저는 그대로인것 같은데.. -,.-);;;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저희 어머니랑 누나도 꼭 자운선가 수행을 받게 해드릴텐데..

고운원에서 저희 어머니 보시게 되거든 기억해주셨다가 생색좀 내주세요~ 도반님들(^^)(_ _)(^^))

 

이때껏 자운선가 수행의 가치를 수박 겉 핥기식 으로만 알다가..

이제서야 속 알맹이맛을 보게 된것 같습니다..

제가 만약.. 자운선가를 못 만났다면... 제가 과연 행복했을지..?

자운선가 수행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가족간의 갈등을 해결할려고 노력했다면.. 그 방법을 찾을수나 있었을지..

우리 가정이 과연 "화목"해질수 있었을지..? 몇십번을 생각하고 생각해보아도..

자운선가를 모르고 진짜"행복"을 알기란.. 정말 불가능했을것 같아요..

 

자운선가는.. 앞으로 살아갈날이 막막하기만 했던 저에게..

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집안의 가장이된 저에게.. 어마어마한 마음의 짐을 덜게 해주었습니다..

 

더욱이 지난시절.. 마음의 고아였던 저에게..

진짜 가족의 화목을 찾아주셨고.. "가족보다 더 가족같은" 자운선가 도반님들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부산지역 도반님들중 제가 가장 존경하는 도반님중 한분이신 "자평"님의 지난 후기글 제목처럼..

저도 정말 "자운선가를 모르기전으로 돌아가지 않을것"이며.. 이젠 돌아갈수도 없습니다..

 

이때껏 자운선가  수행으로 크고작게 도움주셨던 분들도 많으셨고 그 분들께도 항상 감사하였지만..

이번 반본수행으로 도움을 주신분들께..  더욱 감사드리네요..

한분한분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먼저 저의 자운선가 첫번째 마스터님이시자 첫수행때 부터

이 수행법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저에게 "아버지의 열등감"과 "수치받은 살기"를 인지 해주셨던

마스터 젬마님.. 이때껏.. 수치스럽고 열등한게 "나" 라고만 믿고 있었던 저에게..

"그거 민수씨 아니에요.. 관념이에요"라고 항상 인지해 주시고.. 매번 원각홀로 청산하러 갈때마다 

두눈 부릅뜨시고 그 앙증맞은 주먹을 움켜지시면서 "화이팅~!" 응원주시는 마스터젬마님..

지금 젬마님 생각하니.. 상담동에서만 나는 특유의 꽃나무 향이 나는듯 합니다..

년말때 뵈었을때 손 맞잡아 주시면서 다정하게 인사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었어요..

밖에서도 저 정말 수행 열심히하구요.. 올해도 좋은모습으로 고운원에서 자주 뵐수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젬마님♡

 

이번에 저를 처음으로 푸도해주신 clare님~ 

수치받은 살기풀때.. clare님 파동을 느끼면서 저도 관념 끌어올려 푸는데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던것 같아요..

년말때 카페에서 잠시 뵈었는데.. 말씀중이셔서 인사를 제대로 못해드려서 죄송합니다.. (__)

새해복 많이 받으시구요~ 올해도 좋은모습으로 자주뵈어요~ 사랑합니다~ clare님~^^

(제가 [Joy한 고운원 세상]엄청 좋아하는거 알고 있으시지요..?ㅎㅎ 저는 아기다리고기다리고 있습니다ㅎ (__))

 

자운선가에서 손꼽는 강력한 남자푸도님 두분이신 본행님~ 신선님~

두분이 정말 강하게 찔러주셔서 이번 수행으로 저 정말 "계"탔었습니다.. (저희 가족사진 보셨지요..?ㅎㅎ)

정말.. 두분 덕분입니다.. 바쁘신 본행님은 원각홀에서 뵈었을때..

이미 관념이 많이 올라온 상태라 인사를 못드려서 정말 아쉬워 하고 있었는데..

다행이 년말에 고운원 들렀을때 뵙고 인사 드릴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였는지 몰라요..^^

다시한번 두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구요~ 올해도 좋은모습으로 뵙겠습니다~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__)

 

그리고 이번 수행으로 가장 감사한 영희누나~♡(죄송하게도 누나 카페아이디를 몰라요~ㅠㅠ)

수행 둘째날.. 이놈이 죽기싫어 열심히 풀지도 않고.. 뺀질거리면서 은근슬쩍 숙소로 들어갈려고 했었는데..

영희누나한테 딱 걸렸었죠..ㅎㅎ 원각홀에서조차 건성으로 풀고.. 그날 영희누나 한테 따끔하게 충고를 받았기 때문에..

이번 수행때 정말 열심히 풀게된 계기가 되었어요... 고운원에서도 누나한테 감사함을 전했었지만..

지금 돌이켜 보아도.. 그때 누나가 저한테 강하게 지적하지 않았었다면.. 제가 수행 마치고 집에 갔을때..

저희 가족들과 이런 분위기가 되었을지.. 의문입니다.. 그리고 자운선가에 대한 부정성을 이렇게 떨쳐 버렸을지도요..

제가 행복학교 입소해있던 지난 3개월 동안의 영희누나와의 관계보다.. 

짧았지만.. 이번 반본수행때 누나와의 관계가 훨씬 더 가까워진것 같아요....

그리고 다시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제가 뺀질거리며 수행 게을리 하고있을때.. 알아 듣게끔 꾸중해주셨던것과.. 

제가 풀어내기를 열심히 했을때.. 정말 자기일인듯 기뻐해주시고 행복해주셔서요..

(다음에도 제가 뺀질거리고 수행 안하고 있음.. 또 이번처럼 크게 혼내주세요 누나^^ 저 정말 달게 받을께요..^^)

최대한 가까운 시일에 또 찾아뵐께요~ 그때 좋은모습으로 뵈요~ 영희누나~♡ ^^   

 

자운선가에서 저를 한결같이 반겨주시는 존경하고~ 아름다운 연화마스터님~

제가 자운선가 처음수행을 하면서 지금까지.. 저의 센(?) 파동으로 본의아니게 자운선가 도반님들 대부분을 건드린(?)적이 있었는데요.. 그로인해 크고작게 자운선가 도반님들께 (저 공부되라고) 마음으로 많이 맞았었습니다.. ^^;;

그런데.. 연화마스터님께는.. 제가 돌이켜 생각해보아도.. "이건 내가 실수한것 같다.." 고 느낀적이 몇있었는데도..

한번도 제게 되돌려 주시거나(?) 저와의 관계가 어색해진적도 없이.. 한결같이 저를 반겨주셨었어요~

그런 연화님을 보면서.. "정말 진흙에 더러워지지 않을 분이시구나.."라고 혼자 생각하곤 했었답니다.. ^^

연말에 찾아 뵈었을때도 반겨주시고.. 그때 제게 해주신 말씀

"이 수행은 마장이 심해"라고.. "지금 긍정하여도 또 부정성이 올라올거야"하시며..

"나중에 또 부정성이 올라와서 수행끈을 놓지않게끔 수행이후 지금 느낀점들을 적어두는게 좋을꺼야" 라고..

한번도 저의 담당마스터님이 안되셨음에도.. 제게 관심 가져주시고 그 관심을 보여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었어요~    

그때 제게 보여주신 관심에 보답들로.. 흔히 자운선가 수행빨로 감정에 심취해서 올리는 후기글이 아닌..

시간이 많이 지나서.. 돌이켜보아도 후회하지 않고.. 연화님 말씀대로.. 부정성이 올라왔을때..

지금 이 수행에대한 긍정적인 마음을 다시 돌이킬수 있게끔.. 쓰고 지우기를 반복해 가면서..!!

하나하나 진중하게 생각하며 적어 보았습니다 ^^ (잘했나욤..?)

그 특유의 아이같은 함박웃음으로 "아하하하하~" 웃으시는게 정말 매력적이신..존경하고 사랑하는 연화마스터님^^ 

저는 이제.. 빼도박도 못하는.. "자운선가 수행자"입니다~ ^^

올 한해도 자주 뵙고 인사 드릴께요~ 연화마스터님~ 사랑합니다♡

 

저의 행복학교 있을때 담당마스터님 이셨던 솔라마스터님~

반본수행 마지막날 젬마님께서 솔라님이 제가 이번 반본수행때 뭐 청산하고 있냐고..

제가 예전같지 않아서 걱정 하셨다고 젬마님이 말씀해 주셨었어요..

그때 반본수행하는 기간 동안은.. 관념이 많이 올라온 상태여서.. 

이상하게도 제가 상태 괜찮을때는 안보이시고.. 상태 안좋을때만 보이셨어요.. 

그래서 솔라님 뵈었을때.. 가식적으로라도 반가운척 인사를 못드리겠더라구요..

아마도.. (제가 보았을땐..) 자운선가 또래여자 도반님들 통틀어서 3손가락 안에 드시는..

솔라님의 "미모~♡" 때문일껍니다.. 더욱.. 아름다워 지시네요.. 뵐때마다 심쿵 합니다..ㅎㅎ ^//////^);;;;;;;;;

항상 존경하는 자운선가 마스터님으로 경견하게 인사 드릴수 있도록.. 제가 관념청산 많이 할께요~ 솔라님^^

행복학교 있을때.. 저의 마스터님이셔서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솔라님~

올한해도 자주뵐께요~ 사랑합니다~

 

맑고 아름다우신 Anatta 연지님~

이번 수행하고 저의 친누나와의 관계가 너무 좋아져서요.. 곰곰히 생각해보니.. 명상홀에서 단체로 "미움"풀때..

저는.. 미움하면 누나와의 관계로 힘들었는데.. 예전에 많이 괴롭혔던 누나 생각에.. 그냥 안풀고 버티고 있었죠...^^;;;;;;

그때 꿈쩍도 안하고 있는 저를.. 옆에서 풀라고 엄청 도움주셨던~ 고마우신 연지님~^^

결국은 미움 풀다가 죄책감에 왈칵 눈물까지 흘렸었는데.. 저희 가족사진 보셨지요~~?ㅎㅎ

저 "계"탔어요.. ㅎㅎ 연지님 덕분입니다~~ 년말때 뵈었을때 그때의 감사함을 못 전하고 새해 인사만 드렸었네요..^^

자운선가에서 손꼽히는 미녀이신 연지님~ 또 행복학교에서 같이 축구하고 놀날을 아기다리고기다리겠습니다~

멀지 않은날 또 뵐께요~ 연지님^^ 다시한번 정말 감사하고요~ 사랑합니다~

 

항상 맛있는 밥을 준비해주시는 주방팀분들~^^

매번 그러하였지만.. 이번 수행때는 "살기"푸느라 원각홀에서 엄청 질래댔는데요..(?!)

전혀 배고픈줄도 모르고 수행에 임할수 있었습니다.. 전부 주방팀의 정성담긴 음식들과 간식 덕분입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항상 저를 반갑게 맞아주시고.. 이번 수행마칠 때에도 "민수가 집안 일으킬수 있다"고..

힘나는 말씀 해주셨던 존경하는 금주님~ 또 좋은인연 닿아서.. 장기수행 들어가게되면 금주님 일들 많이 도와드릴께요~ ^^

옛말에 '눈물 서말'흘리지 않고는 음식맛을 못낸다는 속담이 있었죠..?

지금의 금주님이 음식맛을 내게끔(?) 도움을주신 윤만님(응??!)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자운선가에 있을때나 없을때나.. 제게 크고작게 신경써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윤만님~

정말 윤만님 집안은 보통 집안이 아니신것 같아요.. 솔라님도 자운선가 최연소 나이에 마스터님 되셨고..

이번에는 아드님이 UFC챔피언 되셨다죠...??? ^^;; 

그런의미에서.. 윤~♡만~♡뉘~임~♡ 앞으로 안 까불것습니다.. (_ _);;;;;;;

제가 많이 존경하고 사랑하는거 아시죠? ㅎㅎ 또 좋은모습으로 인사드리러 갈께요~ 사랑합니다^^

 

 

 

마지막으로..

 

자운선가를 모르던 때에는

항상 한해 마무리를 후회로 보냈고..

새해를 막막함으로 시작 했었습니다..

올해처럼 이렇게 새해를 반길수 있었던건..

전부 자운선가 덕분입니다..

 

지금까지 자운선가가 있기까지 이 길을 걸어와주신 마스터님들과 모든 도반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_ _)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고운원에서 뵙겠습니다~ ^^

사랑합니다~♡

 

 

 

 

 

 

 

 

 

 

 

 

 



 

 

 

 

 

 

 

 

p.s

 

 

 

 

 

 

 

 

 

 

지난 11월 23일은 저의 양력생일 이였습니다..

그날 자운선가 이사장님이신 원각님께서 "자운선가가 모든 법적 문제를 해결했다"는

좋은소식으로 제 생일 선물을 주셨지요..

 

그리고..

 

음력으로 10월19일

자운선가 반본수행 모임 첫날인 12월 6일은

저의 음력생일 이였습니다.. 

반본수행 참가 자체도 저에게 주는 더 없이 큰 선물이 되었는데요..

이번 반본수행으로 제 일생의 선물로 삼은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고요...? ㅎㅎ

잠시.. 제 일생의 선물을 보여드리기 전에..

 

먼저.. 이 사진부터 보시죠~!! 

 

 

 
이 사진의 설명이 적힌 기사내용입니다.
 
스칼렛 요한슨은 우리나라는 물론 전세계적으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섹시미녀 스타이죠.
그녀가 2007년도에 제이 레노가 진행하는 미국의 인기 토크쇼인 '더 투나잇 쇼'에 출연해
감기 때문에 코를 풀게 된 일이 있었답니다.
이때 진행자인 제이 레노가 이 휴지를 경매에 부쳐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자
센스넘치는 스칼렛 요한슨이 이휴지를 봉지에 넣고 사인해서 경매사이트인 이베이에 넘겼다고 하죠.
이 휴지는 5천300달러에 팔렸다고 합니다.
이는 지금 우리나라돈으로 환산하면 560만원이 넘는 엄청난 돈이지요..

 

이외에도..

비틀스 멤버 존 레넌의 어금니가

최소 1만6천달러(약 1천830만원)에 낙찰된 적이 있죠.

엘비스 프레슬리의 머리카락 뭉치는 1만5천달러에 낙찰됀적도 있데요.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남긴 아침식사는 3천154달러에 낙찰되었다죠.

 

 

 

 

 

 

 

 

 

 

 

 

 

자.. 이제..

 

제가 선물로 삼은것이 무엇인지..

 

혹시..

 

이번 반본수행에 참가하셨던

몇 도반님들은 눈치를 채셨는지요..? 

ㅎㅎ

 

 

 

 

여러분..

 

 

제가..

 

선물로 삼은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무엇이냐~!!??

 

자~

 

진정들 하시고..

 

다시~

 

더 가까이서 보여드릴께요~

 

자세히 보세요~

 

반본수행 참가하신 도반님들~

 

 

 

 

 

 

 

이제 눈치 좀 채셨나요..??

 

자.. 자..

 

마지막으로 한번더 자세히 보여드릴께요~

 

 

제가

 

일생의 선물로 삼은..

 

 

이~ !

 

거~ !

 

~ !

 

 

바로오오오오오오오오오~~!!!!!!

 

 

 

 

 

 

 

자운선가 최초 반본수행날~!

 

더욱이~!!

 

자운님이 마지막날 강의를 불참하신

 

전무후무한 날이기도 하면서도오~!!!

 

그 마지막날 대신 강의를 나오신~!!

 

혜라님이 "씹던껌~!!!!" 입니다!!

(사실.. 내용물은 껌인지 정확히 확인을 못했습니다.. -,.-);;

 

여러부~운~~!!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거기에다가~!!!!!!!

 

자운선가에서 3손가락 안에 손꼽는 미녀~!!!!!

 

마스터 솔라님이 직접 건넨~!!

 

"휴~우~지이~~~~~~~" 에 감싼~!!

 

혜라님이 "씹던 껌"이란 말씀이라~

 

이겁니돠아아아아아악~!!!!!

 

 

 

헉...헉...

 

잠시..

 

숨 좀 돌리고.. 헉헉...

 

 

 

 

 

 

 

 

 

 

자.. 여러분..

 

아시겠습니까..??

 

이 혜라님이 "씹던 껌"의 가치를요...?

 

 

한낱~!

 

해외유명 배우와 아티스트, 뮤지션등의 코를 푼 휴지의 가치가 저 정도인데..

 

 

인류의 가름침의 근원지로 기억될 자운선가에서~!!

 

최초~! 반본수행날~!!!

 

인류 역사에 큰스승님으로 남으실

 

자운님이

 

강의에 불참하신 최초 수행날이자~!!

 

그날~!!

 

혜라님이 "씹던 껌" 의 가치는...?

(더욱이 미녀 솔라마스터님이 건넨 휴지입니다~~~!!)

 

 

도반 여러부우운~!!!

 

도대체~~~

 

어느정도 이겠습니까~~~~아아아아~!!

 

그~! 가치는~!!

 

천문학적이지~

 

않겠습니꽈~아아아악~!!!

 

 

 

 

 

 

 

 

 

 

 

 

 

헉.. 헉.. 헉..

 

 

 

 

 

 

 

 

 

 

 

 

 

 

 

 

 

 

 

 

자..

 

 

 

존경하는 자운님과 혜라님..

 

제가 이 "천문학적인 가치"를 지닌 저의 선물을..

 

그냥 드리겠습니다~!

 

 

 

 

대신..

 

저를..

 

 

 

 

깨달음 학교 장학생으로다가~!!!

 

 

 

 

아... 아닙니다.....

 

 

 

 

 

(ㅠ.,ㅠ)

 

 

 

 

 

 

 

 

 

 

 

 

 

 

반본수행 전날이

 

존경하는 자운님 생신 이셨다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변변찮은 제자라.. 마땅히 해드릴것도 없고..

 

그나마 수행후기글 보시는게 "최고의 낙" 이시라는 말씀에..

 

마음으로나마 자운님.. 웃게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글로나마 조금.. 오바를 하였는데.. 

 

혹여라도.. 불편하셨거나.. 무례하였다면..

 

썰렁하였다면.. 더욱..

 

고개숙여 사과 드리겠습니다 자운님..

 

(-_-)(_ _)(-_-)

 

 

 

 

 

뭣 모르는 제가 보아도..

 

자운법은..

 

 

세상 사람들이 제대로만 이해하고 실천한다면..

 

지금 일어나는 개인의 문제와

 

사회적인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수 있는

 

유일한 법이며..

 

가장 강력한 참법임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지금의 자운선가가 있기까지..

 

크고작은 어려움이 있으셨을텐데도 불구하고..

 

저같은 사람에게까지..

 

 

  이 참법을 전파해주신 자운님의 존재 덕분에..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모르기만" 하던 제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존경하는 자운님..

 

이제서야..

 

"삶"이라는 "도로"에.. 나서면서..

 

저도 당당히 "초보딱지"를 붙였습니다..

 

 

 

 

 

 

 

 

 

 

자운선가 수행법은 누구나가 배울수 있는 법이지만..

 

혜라님의 경지나..

 

마스터님들의 경지 까지는..

 

아무나 오를수 있는법은.. 아닌것 같습니다..

 

혹여라도 제가..

 

이 자운선가 운전법 수행법으로..

 

초보딱지를 뗄 정도가 되는 그릇이라면..

 

 

저같이..

 

몸뚱아리가 "나"라고 믿어왔었던..

 

그래서 어떤노력을 하여도 자신의 삶을 바꿀수 없었던 저와 같은 사람들에게..

 

제가 자운선가 마스터님들과 도반님들께 배운 가르침과 사랑을..

 

꼭.. 

 

"관념"의 초보분들께..

 

結草報恩(결초보은) 하겠습니다.. 자운님..

 

 

 

 

 

 

 

많이 늦었습니다만..

 

저의 삶에 은인이시자 큰 스승님으로 나타나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자운님

 

새해 많이 받으십시오

 

(-_-)(_ _)(-_-)

 

 

 

 

 

 

 

 

 

 

 

 

 

 

 

 

 

 

                                 자운선가에 뿌리 내린  ㄴㅏ 無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