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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모든 마음이 아픔임을 알고 받아들이는 곳, 모든 마음이 사랑임을 알고 받아들이는 곳

마음아 놀자 후기


마음아 놀자 바람이 불면, 햇살이 비추면 비가 나리면 어둠이 내려앉으면 당신이 함께 하심을 알겠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엄마, 나의 어머니.

길마지 2017-12-26 13:12

2013년 초참 후 행복 학교와 재참 후 3년 반 만에 지리산 고운동으로 향했습니다. 그냥 지리산 설경 보며 힐링하고 오자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갔지요. 바라던 눈은 보이지 않고 옅은 갈색의 나무들만이 서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반가운 얼굴들과 함께 새롭게 지어진 건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담당 마스터 연화님과의 상담 후 관념과의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참 이상한 아이였습니다.

냉혹한 시어머니, 불같은 아버지, 고된 농사일, 육남매를 먹이고 입히고 평생 허리 한 번 제대로 펴보지 못한 엄마를 보며 불쌍하다, 안타까워 어쩌나 하며 남들도 느끼는 연민을 한 번도 단 한 번도 엄마 살아생전에 저는 느끼지도 표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무덤덤하게 난 엄마처럼 안 살아, 무슨 엄마가 저래, 난 엄마도 없어, 하며.

전 엄마 없는 고아처럼 느끼고 외롭게 살았습니다. 남 같은 엄마에게 무심히 엄마라고 하면서.

 

엄마는 부유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에게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귀하게 자란 여리고 섬세한 외동딸이었습니다. 달콤한 시간도 10여년 남짓, 외할아버지께서 지병으로 돌아가시자 작은 외할아버지께서 몇 푼과 함께 외할머니와 엄마, 외삼촌들을 내쫓았습니다.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외할아버지께는 첫 번째 부인이 있었습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그렇게 외할머니는 아이들과 함께 가족 취급도 받지 못하고 쫓겨났습니다. 근근히 살아가던 어느 날 똑똑하다는 말에 엄마를 아버지에게 시집보내셨습니다.

 

아버지는 근방에 그 누구보다 똑똑하고 총명하다고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성격도 불같은 분이셨습니다. 아버지는 군인이 되고 싶어하셨습니다. 군 시절 아버지를 눈 여겨 보던 상관이 군인이 되라고 권하셨습니다. 크게 될 수 있다고. 꿈에 부푼 아버지는 제대 후 할아버지께 군인이 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할아버지는 펄펄 뛰며 이 놈이 가족 돌보기 싫으니 핑계된다며 기어코 아버지를 눌러 앉히셨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그대로 주저 앉았습니다. 휴화산이 활화산이 되어 버린 것이지요.

 

이런 울분과 분노, 살기를 여리디 여린 나의 엄마는 맨몸으로 맞았습니다. 평생을.

그리고 그대로 얼음처럼 굳었습니다. 오로지 해방되는 그 순간, 죽어야만 벗어날 수 있는 이 지옥같은 굴레를 생명 없는 나무토막처럼 때리면 맞고 욕하면 듣고 일하라면 하고 그렇게 그렇게 오로지 그 순간만을 해방의 그 순간을 기다리며.

 

태아의 나, 엄마는 몇 달이 지나서도 제가 생긴 걸 몰랐습니다. 알게 된 후엔 이 지긋지긋한 혹덩이가 또 생겼네. 하시며 깊은 한숨을 쉬셨습니다. 이미 사내아이가 세명, 계집애도 두 명이나 있었죠. 저는 그냥 기생충같은 그런 존재였습니다. 악착같이 살리라, 내 꼭 살아서 나가리라, 제가 평생 차갑게 세상을 냉소하며 주변사람들도 저도 망가뜨리며 살아온 이유.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푸도님과 황토방에서 엄마에 대해 푸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이내 엄마가 되었습니다.

저의 푸도이신 영희님이 아버지가 되어 입을 벌릴라 치면 저는 아니 엄마는 뜨거운 양철 지붕위의 고양이처럼 펄쩍펄쩍 뛰며 재발 닥치라고, 꺼지라고 혼자두라고 때리며 고함치며 저리가라 살기를 뿜어냈습니다. 모든 것이 싫어, 제발 혼자 나둬, 그냥 다 사라지라고.

엄마는 차가운 2월 욕실 바닥에서 마지막 순간에도 아무도 필요없다고 혼자 내버려두라고 싸늘하게 몇 시간을 혼자 그렇게 누워 계셨습니다. 그렇게 가셨습니다. 저는 끝내 곰같은 엄마 곰처럼 미련하게 같다고 금수만도 못하게 냉소했지요.

 

전쟁처럼 4일내내 내재된 관념과 사투를 벌이고 24일 늦은 5시 무렵 입구의 정자에 앉아 엄마와 저는 ‘섬집아기’를 무한 반복하며 같이 불렀습니다. 스산한 바람사이로 해가 비추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엄마 없는 고아가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엄마, 나의 어머니가 같이 했습니다. 엄마를 찾았습니다.

 

태산처럼 든든하신 자운님, 마지막날 저를 세 번이나 안아 주셨습니다. 실물이 엄~청나게 더 아름답고 고혹적인 혜라님, 길지 않은 저의 팔로 안아도 많이 남는 그 가냘픈 어깨, 엄청난 사랑으로 제자들을 감싸안으시는 그 커다란 사랑 앞에 깊이 고개 숙입니다.

마스터님들, 함께 하신 도반님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나지막하고 귀엽게 “독재자 관념 쓰시죠”하시던 하늘 아이님, 저와 비슷한 관념으로 함께 해주신 푸근하고 넉넉한 지우개님, 귀가길 동네까지 함께 하며 즐거워하던 나의 마음님, 사랑합니다. 공작부인보다 더 우아해지신 영희 푸도님, 깊이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손을 맞잡고 ‘만남’을 부르다 뜨거운 눈물을 함께 쏟아 낸 재미님, ‘다시 여기서 볼 수 있지?’

했더니 “네”라고 분명히 들었는데 이 글을 읽으면 말해줘요. 그 말이 맞다고, 꼭.

 

너무 맛있는 밥을 지어주신 주방팀 진심으로 고마워요.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