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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아 놀자 후기


마음아 놀자 70억과도 바꿀 수 없는 나

봄이2 2017-03-06 00:00

안녕하세요 ~ 260기 봄이 2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스승님과 마스터님들 그리고 도반님들 너무너무 반갑습니다.

 

작년 7월 재참 이후 `무서운 영화보기` 미션을 딱 1편으로 끝내고 ~

삼참 오기 전 날까지 침대에 달라붙어 TV보며, 잠자며,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로 지냈습니다.

하긴 해야겠는데 너무 무섭고, 도데체 왜 해야하는 건가 싶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작년 5월 초참, 7월 재참때처럼 생활은 여전히 게으르고 한심했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불안하거나 조급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내주신 숙제를 거의 안해서 창피하고, 혼날까봐 두려운 마음을 살짝 느끼며

`때가 되었으니 가자` 하고 오랜만에 고운원으로 가는 짐을 쌌습니다. 아주 가볍게 ㅋ

(3월이라 봄이라며 겨울옷을 거의 안챙겼겨든요)

 

첫 날, 신념님의 수행법 강의를 들으며 깜짝 놀랐습니다.

이전보다 쉽고 확실하게 이해가 되는 강의 내용에 한 번 놀랐고,

너무나 젊어지신 청년같은 모습에 부러워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이후 혜라님, 한나님, 젬마님 등등 비슷한 놀라움과 부러움은 계속 되었습니다)

 

부고장을 받아 적고 유서를 쓰는데 눈물이 콸콸 쏟아졌습니다.

다음은 저의 부고장 내용입니다.

`나 김규리(김정희)는 4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

사람들은 나를 또라이 또는 외곬수로 기억할 것이다.

살면서 내가 가장 잘한 일은 오늘 기꺼히 죽는 일이다.

살면서 내가 가장 후회된 일은 자운선가를 만나고도 그 가치를 몰라 수행을 안한 것이다.`

내 죽음에 슬퍼하실 늙으신 아버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져 펑펑 울었고,

평생 참법을 찾아 헤맸는데 정작 만나서는 거부하고 도망쳤던 내 어리석음에 통곡했습니다.

 

그렇게 죽고 나서 본격적으로 수행에 들어가니,

현실에서의 열등한 나의 모습이 조금씩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나이 50이 다되어 가는데 모아 놓은 재산이라곤 전세 7500이 전부이고,

직장이라곤 급여 100도 채 안되는 아르바이트 수준이고,

성격이 지랄 맞아 시댁식구들을 대상으로 신랑과 8년 내내 투쟁중인

(여성평등을 위한 거라며)내 모습에 열등감, 수치심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혜라님의 강의와 연단, 한나님과 푸도님의 안내로 점점 더 깊이 내안의 찌질이가 인식되었고,

살면서 늘 느꼇던 그 실체없는 두려움이,

들킬까봐~ 틀켜서 수치당할까봐~ 무서워하는 관념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이때까지는 가슴으로 와닿지 않았기 때문에 온전히 알지는 못했습니다)

 

둘째날 저녁 드.디. 어. 밤에 산에 갔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그다지 무섭지 않았습니다.

내가 평소에 산을 좋아해서 그런가보다 생각했는데, 너~무 무서워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으려고

내마음이 아예 차단한 거라고 푸도님이 알려주었습니다.

헐.

그리곤 알았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내모습을 있는 그대로 안보고, 안느끼고 싶어서 거짓말로 세상을 속이고

나자신을 우월이로 위장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세상은 이미 다 알고 있는데  나만 깜쪽같이 속였다고 믿고는  비웃고 조롱했으며,

산같이 쌓인  거짓말들이 들통날까봐 두려워서 덜덜 떨며 잠도 제대로 못자고 살아왔다는 것을요.

 

거짓말의 시작은 20대 초반이었습니다.

23살 대학1학년 때 학생활동을 하며, 등록금 동결 단식 투쟁을 주도하다가

7일째 되는 날 쓰러져  근처 작은 병원으로 갔는데  의사말이 죽어간다며 큰병원으로 옮기라고 했습니다.

달리는 엠블런스 안에서 내가 죽을까봐 걱정하는 두 조교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난 비웃었습니다.

`무슨 소리야  ~ 내가 왜 죽어~ 이렇게 멀쩡한데...`

몸반응은 할 수 없었지만 내가 존재한다는 느낌은 평소보다 오히려 더 또렷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병원에 도착해서 심장마사지와 포도당 주사로 기력을 찾은 나는,  이후 인생관이 확 바뀌었습니다.

그 당시는 뭔지 잘 몰랐기에 몸과 상관없이 느껴졌더 그 새로운 나를 찾아 정신없이 헤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해 봄에 휴학을 하고, 고등학교때 잠깐 다녔던 교회를 다시 나갔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께 순종하려고 노력하면서 좋은 말씀을 해주시는 목사님을 찾아, 서울 근교에 있는 교회를

미친듯이 찾아다니며 설교를 들었습니다.

해답을 얻지 못하자 불교서적과 무속신앙 등 다양한 책을 탐닉하기 시작했고,

결국은 내 안에서 답을 찾기로 결심하고 고행을 하기위해 나자신의 몸을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다시 한 번 죽기 직전까지 가보면 될 것 같았고, 한 순간에 뻥!하고 터지며 대각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해 겨울 작정을 하고 독서실에 들어가 21일간 물만 먹으며 차가운 바닥에서 단식을 했습니다.

그런데...

죽기 살기로 버텼는데...

배만 고팠습니다.

허탈한 상태로 시장으로 달려가 미친듯이 먹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폭식과 거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울면서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는 내 모습이 정말 너무 금찍했습니다.

이까짓 식욕 하나 억제 못하는 내가 한심하고,  쓰레기같았습니다. 

내가 토해낸 구토물 같았습니다.

 

일상이 거짓이 되어갔습니다.

먹고 토하는 생활을 하기 위해, 그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그리고 자살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나자신과 가족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며 20년을 살았습니다.

(먹고 토하는 내가 사람같지 않고 식귀같아 수시로 자살충동이 일었거든요.)

수행도 거짓으로 했습니다.

단월드에서 15년 가까히 수련했지만 이런 내 모습을 단 한번도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았고,

단체의 대표이자 스승이라는 분과 기운줄을 연결하기 위해 수 천만원의 돈은 쓸지언정 마음을 열지는 않았습니다.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철저히 버림 받은 에고라 나자신을 믿지 못했고, 남을 믿지 않았습니다.

애정결핍 또한 엄청나서 거지처럼 사랑을 구걸하며 살았고, 성살기가 강해  주변에 있는 남자, 여자 모두를 

보이지 않는 칼로 푹푹 찌르며 살아왔습니다.  나 한 번 찌르고, 남 한 번 찌르면서 ....

미친년처럼.

 

혜라님의 사랑과 연단, 한나님과 푸도님의 안내로 가열차게 수행을 하고,  

셋째 날 밤 두번 째 산행을 했습니다.

어둠 속에서 두려움이 올라오는 걸 느낄 때면 `이게 바로 들켜서 수치당할까봐 올라오는 두려움이야~`를

계속해서 되내였습니다.

용기내어 뒤도 돌아보고, 푸도님 지시대로 산속에서 10분 간 앉아 있어도 보고, 최대한 믿고 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1시간 가량의 산행을 마치고 돌아와 푸도님 앞에서 엉엉 울었습니다.

`너무 무서웠어요 ~~`

나를 꼬옥 안아주며 그동안 어떻게 그런 두려움을 안고 살았냐며 공감해주는 푸도님에게, 살려주어 고맙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눈이 초롱초롱해지고 몸도 훨씬 가벼워졌습니다.

`오늘 밤은 꿈도 안꾸고 잘~ 잘거라`는 푸도님 말에 숙면을 기대했지만 ,

꿈 속에서  새벽에 2번 더 산에 갔다오라는 지시가 들려서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만  때렸습니다.

 

넷째 날, 혜라님의 사랑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만 빼고 다 사랑하시는 것 같고,

이 수행을 잘해야 사랑해 주실것 같고,

사랑을 받는다 해도 아주 잠깐일 뿐 곧 사라질 것 같아 거부하고 있는, 철저히 버림받았다고 믿는,

그 지랄맞은 관념이 인지되면서 동시에 혜라님의 따뜻하고  조건 없는 사랑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그리고 알았습니다.

내가 그토록 찾아헤맸던 한 사람.

언제 어디서든 무조건 내 편이 되어주는 한 사람.

내가 맘껏 기대도 그런 나를 짐으로 느끼지 않을 강인한 한 사람이 바로 혜라님이신 것을...

나를 영원한 안식처인 본래로 안내해주실 귀인이 바로 자운님과 혜라님이신것을요.

 

그렇게 마음이 열리자 몸이 열렸습니다.

넷째 날 밤, 다시 한 번 세 번째 산행을 하려는데 무서워 죽을것 같았습니다.

아침에 눈 뜨는 순간부터 순간순간 산속의 두려움이 느껴지더니, 춤수행을 미친듯이 하고 나서도

산입구에서 발걸음이 그만 멈추어 버렸습니다.

입구까지 갔다가 돌아오기를 여러 번 하다가 한 도반님의 도움으로 용기를 내어 다녀왔습니다.

어찌나 무서웠던지 산행 내내 온 몸이 덜덜 떨렸고, 다 와서는 왼쪽 무릎 아래가 딱딱하게 굳어져서

숙소까지 절뚝거리며 들어갔습니다.

그날 밤,  꿈 안꾸고 잘 잤습니다.

하.하. 하.

 

이제 더 이상 스스로 고통에 빠져 살지 않겠습니다.

열등한 모습 감추려고 비겁하게 거짓말하지 않겠습니다.

비열하게 내 가족과 지인들을,  나 살려고 이용하지 않겠습니다.

매순간 조금씩 조금씩 노력하겠습니다.

 

48살 김규리가 7살 김규리에게 그렇게 약속하고 씩씩하게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여기가 본래가 주신 현재 나의 수행터이니까요.

이젠 혼자가 아닙니다.

소중한 마음의 부모와 더불어 자운선가 가족이 왕창 생겼습니다.

너무너무 든든합니다.

 

감사합니다.

보은하겠습니다.

아자!  아자!! 아자!!!

 

(긴 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알랴뷰~~~)